‘섬으로 간다’는 말의 뜻
탁!
바람 없는 날이니 연착륙이겠는데
잎치고는 무게 잡는 존재라 그런지 소리를 내는 거야.
조신하지 않은 플러터너스 잎을 탓하는 눈초리로 보다가
치켜드니, 아! 오늘도 푸르구나.
계약직 출근시간에 대하여 맘에 안 든다고 뭐라 할 사람 없으니
갈아탈 버스가 빨리 오지 않는다고 해서 초조할 이유 없다.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또 한 모금 입에 물고 구름 한번 쳐다보고”로 널널하지만
저렇게 파란 하늘 바라보며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로 경건모드로 돌입했는데
응? ‘남산 위에 저 소나무’를 국민성금으로 만들겠다는 이들 생각나는 바람에
도리 없이 구겨지고 말았다.
{나무가 가만히 있고자 하나... 좌우에서 까부누나.}
에고, 딴 생각하자고.
그게 기사거리가 되는 건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얼마 전 '행복한 사람' 조동진이 제주도로 이사했다.
뮤지션이 삶의 본거지를 제주도로 옮겼다는 건, 더 이상 활동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멀고 먼 섬으로?
아니지, 제주도가 뭐 탐라국인가, 귀양 가는 데도 아니고
날마다 제주도 행이 활주로에서 줄지어 만선대기인데 뭘.
오가기 어려워 사람 보기 힘든 데라면
경기도 어디쯤 차 없는 사람이 서울 나다니기 좀 그런 데는 섬 아닌가?
섬은
바다가 기르는 상처
저 드넓은 바다에 섬이 없다면
다른 그 무엇이 있어
이 세상과 내통(內通)할 수 있으리
가슴 속을 떠돌던
아픔의 덩어리들이
섬이 되어버린 지금
희망과 내통할 수 있다면
사나운 파도에 할퀴어도 좋으리
-방석구, ‘섬’-
그래도 ‘섬’이라는 말이 까마득히 급상승하는 종달새 같기도 하고
꼴깍 해 떨어지기 전 꽃구름 같기도 해서
일단 마음에 꽂히면 한없이 부푸는 동경의 바람주머니를 차게 된다.
가서 살라면 고개 설레설레할 사람조차 말이지.
그런 돌림노래 있었잖아, “이 몸이 새라면 날아가리”라는.
그건 ‘저 건너 보이는 작은 섬’이다.
“나 날지 못하여 집에 있으리”로 끝나지만 가자면 못 갈 데가 아니다.
송수남, ‘회상’
예이츠는 ‘호수의 작은 섬 이니스프리’를 노래했고
섬은 아니라도 그 원조 할매집쯤 되는 도연명의 ‘귀거래사’도 있었다.
‘보길도’라는 인공 이상향도 있었고.
그런 게 다 그렇더라고.
외딴 곳이라 해도 파발마나 전서구 닿을 데에 가 있으니까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라는 기구 띄워놓고 불러주기를 기다리더라.
아주 뜻 접고 숨기로 했다고 치고
제가 들어가고 나면 더 이상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은 아니니까.
김환기, ‘산중대작’
아무 데면 어떤가?
뜬세상(浮世)에 손(逆旅過客) 노릇도 잠시 동안뿐이니
할 만하면 견디시고 그럴 수 있거든 즐기시게.
아, 섬 얘기 나온 김에 말이지
John Donne은 “No man is an island.”라고 폼나게 말하지 않았던가
누구라도 횡으로 종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겠는데
그렇다고 모자이크의 한 조각 같은 존재감에 넉넉한 표정지은 게 아니고
죽음에 대해 많이 묵상한 만큼 죽음을 많이 두려워했다고 그러대.
지금 나 같은 존재로 늘 머물러야 할 건 뭐야?
새로 지어지는 게 뭐 그리 두렵다고?
서세옥, ‘사람들’
참, 조동진에게 인사해야지.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사라졌다고 하더라마는
그때 처음으로 대살육을 목격한 것도 아니고
누구라도 한세상 살면서 예쁜 동거 슬픈 이별 수없이 저지르는데
어찌 고운 노래가 끊어지겠는가.
그대 일회 출연 억~! 혹은 ‘Immortal Beethoven’ 그렇지 않더라도
또래들이야 다 기억하고 아끼는 예인이니
주거지 바뀌었더라도 노래는 계속 부르시게.
섬에 갔더라도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신 줄 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