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이풍지다’가 무슨 뜻이에요?

-어디서 들었는데?

-왜 “이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라는 노래 있잖아요?

{내 참, 저들 쓰는 말로 내가 모르는 것도 많겠지만...}

 

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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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육교 위에서 방물장수가 펴놓은 것들 중에는 한 쪽엔 색경, 다른 쪽엔 사진을 넣게 된 접이식 쪽거울이 있었는데 말이지, 거기에 아예 ‘00미’ 등 백만인의 애인이 붙박이로 들어가 있는데, 그 웃는 얼굴 아래 ‘희망’이라는 금박 글자를 새겨 넣기도 했다고.  그러니까 거울을 들여다보며 웃으면 그녀와 내가 나란히 행복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 아 벅찬 가슴! OOO, XXX, 다음에는 나!  뭐 그쯤이 나의 희망? {중증(重症)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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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이기는 하지만 별나게 ‘희망’이라는 말이 흔히 나도는 것 같다.

말이 통화팽창 되듯 한 건 정작 필요한 게 귀해져서일 게다.

그래 우리 희망이 뭔데?

경제가 잘 돌아가는? 그러자고 유능하다고 짐작한 분에게 몰표 주었을 것이다.

지구촌 전체가 추위 타는데 한국 형편을 두고 딱히 그분 잘못이랄 것도 아니고

‘감성 정치’를 하시겠다는 분에게 감동되는 이들이 많지 않은 것도 세상이 그런 걸 어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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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겨울이라지만, 내가 사는 데는 꼭 그렇지도 않다.

뭐 ‘귀뚜라미’ 실내온도 조절을 12도 쯤에 맞춰두어서이기도 하지만

다 추운 건 아니고 딱 한 군데, 그게 X고드름을 도끼로 까부수던 한뎃뒷간도 아닌데

아으 거기 들어가기는 정말 싫어.

설 연휴 나흘 동안 나갈 일도 없고 찾아올 이도 없으니

수염 밀거나 머리 씻는-속을 헹구는 게 아니고 털을 빠는- 일 좀 거르면 어때

밥해먹기는 귀찮아하면서도 그 짓은 꼬박꼬박 해야 하는지?

벗자면 차력사의 외마디 기합성이라도 질러야 하고

찬물 더운물 조절이 잘 안 되는 샤워 꼭지를 들이대고 있자면 다라니로 주절주절...

춥지? 춥지만, 우리...

 

    …춥지만, 우리

    이제

    절망을 희망으로 색칠하기

    한참을 돌아오는 길에는

    채소 파는 아줌마에게

    이렇게 물어보기

 

    희망 한 단에 얼마예요?

 

김강태 시인의 ‘돌아오는 길’이라는 시를 소리꾼 장사익이 ‘희망 한 단’이라는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아 희망을 사고팔 수 있다면. 슬픔을 기쁨과, 불행을 행복과 물물교환 할 수 있다면.

그게 슬픔과 불행은 널렸고 기쁨과 행복은 소량이니까 수급이 맞아떨어지지 않는 거라.

 

희망은 누가 주는 게 아니고 내 안에서 만들어지고 품고 작용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누룩을 떼듯 다른 이들에게 나눠줘서 그들도 부풀게 할 수는 있겠다.

남에게 떼어주었다고 해서 내 필요한 것이 모자라게 되지는 않는다.

희망은 확실하기만 하면 소량만 지녔더라도 넉넉하다.

어느 집에 가서 인사로 빵이 맛있다고 했더니 반죽을 조금 떼어주면서 자기도 누구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그러더라.

그렇게 우리는 남들에게 여러 차례 나누어주고 받은 사람은 또 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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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희망이 뭐지? 당신 희망은 뭐냐고?

난 뭐... 이렇다 할 소망이 없는 것 같아.

사랑하는 임, 할 일, 먹을 것 있으니 됐네.

{얼마나 있으면? “부귀영화는 가시로 만든 이불과 베개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됐네.}

{희망은 일종의 결핍증이 아닐까 싶어.

그렇지만 살아있다는, 그리고 살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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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믿음, 소망, 사랑, 그럴 때의 얘기 아니고

개인적으로 바라는 사소한 것들의 목록을 읊을 필요도 없겠고

‘그저 우리 모두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식의 바람이라면

이 백성이 ‘거물숭배’의 원시신앙에서는 벗어나면 좋겠다는...

왜 ‘고등종교’에서조차 바벨탑 건설, 쪽수 불리기, 키 재기에 열 올리는지?

‘세계 최대의 교회’니 그런 것 말이야.

 

    가야산 해인사에서 본 싸리비

    가을이 오면 이 싸리비가 낙엽들을

    솨악 솨악 모으겠지

    내 마음에도 커다란 싸리비 하나 만들어

    잡다한 생각 나부랭이들

    허튼 욕심, 바보 같은 버릇

    솨악 솨악 쓸어버리고 싶다

 

    나는 해인사에 세우겠다는

    세계 최대의 청동불상보다

    한 구석에 쌓아 놓은 싸리비에게나

    절을 올리련다

 

    불상이 크면 뭐 하나

    차라리 큰 싸리비 하나 만들어

    세상의 때를

    솨악 솨악 비질이나 하지

    그게 부처님 마음이 아닐까?

 

     -손인호, ‘해인사 싸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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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는 이들 너무 많아서 얘긴데...

어쩌겠니? 울도록 내버려두는 거지.

{속으로 따라 울면서 말이지.}

 

    남이 노래할 땐

    잠자코 들어주는 거라,

    끝날 때까지.

 

    소쩍. . . 쩍

    쩍. . . 소ㅎ쩍. . .

    ㅎ쩍

    . . . 훌쩍. . .

 

    누군가 울 땐

    가만있는 거라

    그칠 때까지.

 

     -윤제림, ‘소쩍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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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그러시던 걸.

윤동주가 조금 비틀긴 했지만, 영원히 복이 있다는 뜻으로 받기로 하고.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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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슬퍼하는 이들 많으면

같이 기뻐하는 이들 많은 만큼이나 좋은 세상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