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동지 지나고 두 주, 해가 조금 길어진 듯하지만
그래도 직장 문 나서는데 어둑하고 달이 중천에 떴다.
가면 또 밥 먹어야 되겠네?
“쓴 나물 데운 물이 고기도곤 맛이 이셰”라고 허풍떨 것도 없고
고기 있으면 먹고 없으면 다른 있는 것 먹으면 된다.
어제 잘 먹었으니까...
어리굴젓이나 식해 한 점 밥술에 올려놓고... 그런 생각날 때도 있지만
맛있는 김치 있으면 됐지, 총각김치 두 쪽 내놨는데 한 쪽 씹는 동안 한 사발 비웠다.
먹고 났는데 이제 뭐하지?
우물거리다보면 저녁 다섯 시간 금방 갈 것이다.
그럼 자야 하고 하루 없어진다.
문경으로 내려오라고 그러는데
제삼관문쯤에서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를 읊어도 괜찮을 것을
미적거리다가 떠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