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다 해도 멀어졌다 해도
유월 말일께 금성과 목성이 겹친 듯하다가 8월까지는 두 행성이 초저녁에 서쪽 하늘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빛나며 마치 가까운 친구들이 동행하는 모습처럼 보일 것입니다. 가깝다면 얼마나 가까울까? 행성들은 각자 타원형의 궤도를 그리며 태양 주위를 돌기 때문에 가장 가까울 때와 가장 멀 때의 거리는 몇 배나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금성과 목성간의 거리라, 4.5 AU-해와 지구 사이의 거리가 1 AU, 1.5억 km-라고요.
애써 찍어봤자 채송화 씨, 바퀴벌레 똥 정도의 두 점
그 두 점 간의 거리라...
“우리가 언제 이만큼 가까운 적이 있던가?” 해도 너무 먼 거라고요. 박재삼 시인은 읊었는지 한숨 쉬었는지“아득하면 되리라/ 해와 달 별까지의/ 거리말인가/ 어쩌겠나 그냥 그 아득하면 되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거리도/ 자로 재지 못할 바엔/ 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 고 그랬지요. 가까워도 겹쳐지지는 않지, 다 알듯 해도 모르는 게 사람 속, 사랑하면 할수록 거리감은 야속하게 늘어나니 말이지요.
기하학에서 접점(接點)은 직선이 곡선에 접하거나 평면이 곡면에 접하는 점을 가리키는데요, 그 tangential point라는 게 만나는 점이기도 하지만 어긋나기 시작하는 지점이기도 하거든요. 가까워지다가 마침내 만나고서는 떨어지고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게 이치(理致)인지. {회자정리(會者定離)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겠지요.} 기하학에서만 아니고 인생에서도 만남이란 스침이 아닌지 그런 생각도 듭니다. 물론 그 스침이 인생을 통째로 변화시키기도 하지만요. 스쳤다고 해도 영향력은 존속하는 동안 이어지기도 하고요. 헤어지고 멀어졌다고 해서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고요.
떠돌이별이 만난다? 아 그런 건 대재앙이고, 여간해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거니까 생각할 것도 아니지만, 가까워진다? 그거야 앞서 말씀드린 대로 각자 타원의 궤도에 따라 움직이다가 둘 사이에 가장 가까워질 때가 있는데, 그러한 때의 주기(週期)가 인생의 수명을 넘어서기도 하는데요, 사람은 일단 멀어졌다가 남은 생애에 가까워질 수 있겠지요? 그러리라 믿고 싶어요. 그리고 아주 포개지지 않았다고 해서 ‘만났다’는 말에 인색할 것 있나요, 만날 수 있겠지요?
“아득하면 되리라” 할 것도 아니고,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할 것도 아니고, “아 그때 참 좋았어”라는 기억만으로도 인생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한번 힐끗 마주침’만으로도 평생의 영감과 창조력의 근원이 되었던 베아트리체가 아니었더라도 말입니다. 떠난 사람이 반드시 돌아온다(去者必返)?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고, 그러지 말았으면 좋을 수도 있겠지요. 그대라면 그러기를. 예전과 같은 모습과 마음은 아니더라도 말이지요.
가깝다 해도 멀리 있는 그대에게, 멀리 있어도 멀어지지 않은 것 같은 그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