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에 그대를 그리며

 

‘아미 고운 조선 색시’(박남준, ‘꿈같은 꿈같은’)라는 말도 있더라마는

다른 감탄할 데가 없어서는 아닌데 그저 눈썹 하나만 고와도 얼굴이 확 살아나더라고.

{밀고 그리는 재주에 대해서야 잘 모르니까 할 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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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예문이던가 아니면 백운교 청운교의 아치(弧線)같은 그믐달이 아치(雅致)로구나.

태어난 것에는 전성기가 있어 그 후 급히 쇠락하는데

그믐 바로 다음이 초하루라니 하!

의식체가 그저 두어 주기(週期)만 견딜 수 있다면!

그게 “나 다시 태어나면...”이라는 바람(望)이리라.

될 법한 일 아니라서 그저 달이나 보며 넉넉한 가슴처럼 차오를 때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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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아닌데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한두 대로는 끄떡 않을 맷집이라도 시시한 잽을 수없이 허용하고는

하릴없이 흔들리는 거야.

{세월에 장사 없다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쯤만 해도 거시물리학이고

맨 밑 양자의 약동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존재는 진동이거든.

진폭이 미세하여 감지하지 못하는 것은 놔두고라도

봄(視)과 들음(聽) 아니 모든 느낌(感)은 진동과 파장으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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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꺼내달라고 목구멍으로 치미는 슬픔을 삼키며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달랬다.

너마저 빠져나가면 허물어질 것 같으니 내 몸 안에 머물라고 부탁했다.

 

헤어진 것들, 나갈 것들, 밖에 있는 것들, 다가올 것들에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말로 잡을 것도 아니고 쫓을 것도 없고

있는 동안 어우르고 떨어져나가면 그런가보다 하며

오는 이 반겼듯이 가는 이 기쁘게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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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까 무엇일까 알지 못하면서

그냥 기다림도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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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비가 왔나 보다.

죽을 날도 가까워 왔는데 무슨 생각을 해야 되나.  꿈은 무한하고 세월은 모자라고.”

樹話가 1974년 6월16일 별세하기 39일 전 일기에 남긴 말이라고 한다.

61세에 가셨으니 아깝다.

“내가 그린 점 하늘 끝에 갔을까?”

그게 좀...

{“점은 면적이 없는 건데 어떻게 그리냐?”로 시작해서 일러드릴 말씀이 좀 있으나

그럴 무드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