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매화

 

지금은 남의 집인 살던 데를 가보니까

돌보지 않은 뒤꼍에 꽃들이 피기 시작했더라고.

뭐가 있는지 모르니까 그냥 파헤쳤을 것 같은 땅에 또 뭘 심었겠지.

이럭저럭 살아남은 옛것들이 싹을 내고 봉오리 터지데.

마침 비가 내리는데 봄비가 험하지는 않아서 꽃잎에 방울로 내려앉았데.

무정한 개가 짖어대는데 설명할 길이 없어 도망치듯 나왔다.

떠난 데를 둘러보는 것도 무단침입 죄에 해당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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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 매화를 볼까 하고 선암사에 들린 적이 있는데

마침 비 내리고 얼어붙었다가 녹고 해서 꼴이 좀 그랬다.

부푼 멍울에 맺힌 방울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툭 떨어지기도 했다.

이제 와서 눈물 같다 할 것 있나 빗물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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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아파하기 때문에 나도 아프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고 가서 받치면 더 아프다고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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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게나 잘린 가지에서 솟구치는 붉음이 곱기만 해서 아픔 잊었네

 

 

맺힌 것이 흐르게 되는지 흐름에서 놓여난 게 맺히는 것인지

아플 때는 그런 한가한 생각조차 못할 거라.

입자냐 파장이냐 그런 건 처음부터 말씨름이었지 문제가 아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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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그림

 

 

부풀다, 맺히다, 떨어지다, 모이다, 흐르다, 흩어지다...

그런 유전(流轉)을 생각해본다.

밤에는 흐린 하늘 개이면 좋겠다.

열나흘 달은 보았는데 하루 거른 다음에 “볼 것 다 봤다”고 그럴 건지?

“大成若缺 其用不弊(대성약결 기용불폐) 大盈若沖 其用不窮(대영약충 기용불궁)”이라는 말이

입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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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그림

 

{Dallas, Texas 살던 곳에 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