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하늘에
하늘빛이 붓 빤 물 같아서야 안 되는데
가위 끝으로 뽁 찌르고 주욱 찢을까 그러다가
제 무게 견디지 못해서 터지는 거야 어쩌겠냐만
아서라 큰 어른 가시는 길 배웅한다고 늘어선 이들 젖을라
우수를 확인하며 한 차례 뿌릴 때까지는
잿빛 캔버스에 노랑 물감으로 그리운 얼굴을 그려 넣자
촐싹거리며 먼저 나왔다가 단단히 경쳤네만
언 땅 뚫고나왔다가 얼음비까지 뒤집어쓰고도
좋기만 한 거야
찾아올 이들 나서지 않아 보여줄 수 없는데도
나대로 좋기만 한 거야
고목(古木)이라고 고목(枯木) 아니어서 때 되면 꽃을 단다네
꺼진 불 사윈 재라도 다시 보게
불씨는 언제나 거기 있거든
지핀지 언젠지 모를 아궁이라고 불길 빨아들이지 못할 데는 아니라고
일어날 수 있다는 개연성과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
두 동심원 사이의 좁은 해로를 지나가다가
부설한 기뢰를 피하지 못했다고 치고
꼭 그럴 것까지 없었는데 라는 후회는 접게
업보란 형벌이 아니고 시작한 대로 간다는 뜻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된 것이고 키잡이는 내가 아니니까
아 그러십니까 그런 줄 알고 맡기겠습니다 그러고
자든지 놀든지
흐린 하늘이 옅은 빛, 엷은 빛깔이더니 점점 짙어진다
뭐가 내리는가 싶어 손바닥을 펼쳐 몇 번씩 확인했는데
눈으로 겨우 보일만한 가늘고 성긴 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좀 지나면 우산으로 다 가릴 수 없을 만큼 쏟아질까
그러고는 “이 비 그치면” 타령 터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