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업, 폐업 사인 늘어나기에
그래본 적 있으니까 아는 얘긴데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야” 그런 무익한 수고에 대한 후회와 자괴감이 밀려올 때도 있고
일없는 집적거림을 피하고 싶기도 해서
“확 닫아버려?” 했다가
그래도 쏟은 정성이 아깝고
작품은 아니고 더욱이 분신이기야 하겠냐만
아무렴 쓰레받기에 쓸어 모은 머리카락과 살비듬 같은 건 아니잖아
차마 버리지 못해서
일단 ‘비공개’로 숨고르기를 택했을 것이다.
나도 좀 그래.
주울 때는 곱다고 가져왔을 조개껍질들
환금성이나 사료의 가치가 없는 것들을 왜 버리지 못하는지
바보처럼 매여 끌려가는지?
돌아보면 다른 일들도 결정을 미뤄가다가
무게를 감당치 못한 것들이 알아서 떨어져나가면
그때 안도의 한숨을 쉬곤 했지.
“에이 저 아까운 걸...” 하는 마음 없더라고.
{요즘엔 무슨 약장사, 책장사 같은 이들이 명함을 떨어뜨리고 가더라.
흔적 남기는 게 불법은 아니니까 규제할 수도 없겠지만
밤새 빨치산이 다녀간 듯 솟대에 불온한 깃발 달아놓은 걸 보면 찜찜하거든.
허락 없이 빌보드에 올리고서 광고비 낼 것도 아니고.
무슨 상관이냐고?
그게... 날 찾아온 이가 다 저같이 고운 사람인 줄 알고 안면 트러 갔다가
“에고, 이게 뭐야?” 할 걸 생각하면 기분이 안 좋단 말이지.
뱀이 땅 냄새 맡으면 살아난다고 해서 죽은 걸 나뭇가지에 걸어놓기도 하고 그랬는데
어떤 놈들은 뱀이나 송충이 잡은 것들을 비료봉지에 담아 매어놓으면
그냥 지나가지 않고 열어보는 사람도 있었지.
호기심이 죄지 시껍했다고 범인 적발을 위해서 수사력을 총동원할 것도 아니네.
그렇지만 내 나무에 불쾌한 것들 부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장석주 시인은 ‘겨울나무’를 두고 그랬다.
당분간 폐업합니다 이 들끓는 영혼을
잎사귀를 떼어 버릴 때
마음도 떼어 버리고
문패도 내렸습니다
나도 안다고.
끌고 나갈수록 손해라서 간판 내리고 싶을 때가 있지.
임대료, 전열비, 종업원 임금... 지불할 능력 없으면서 붙잡고 있을 때 마음을.
어쩌다가 문 열고 들어오는 손님이 반갑기는커녕 “뭘 보고 이런 데를...”로 짜증스러운.
‘불경기’, ‘불황’으로는 모자라서 “대공황보다 더한...”으로 난국을 지적하는데
문 닫은 데도 많고 어쩔 수 없어 열고 있는 데가 태반이겠지 뭐.
누구라고 태평하겠나 다들 걱정은 쌓이고 시름은 깊어가지만
이제껏 산다는 게 죽을 뻔한 적을 수없이 지나친 궤적 아니겠는가
더러 웃기도 하고 그러대.
산사람 입에 거미줄 치랴,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그런 말들 그냥 생긴 게 아니지.
살자면 사는 것이고
모판 벌리고 쪼그리고 앉은 하루를 버티면 불기 있는 온돌에 몸 눕힐 수 있는 것이다.
가끔 들리던 방들 중에 문 닫아 건 데가 늘어났다.
나는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3월부터 바빠지는데 이참에 나도?
그런데 폐업했던 나무들 다시 잎 달 준비하고 있지 않는가.
보여줄 거 다 보여준 게 무슨 노출증이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였고
폐업인지 휴업인지 간판 내렸던 것도 그래야 겨울을 날 수 있어서였지만
이제 봄 아닌가?
겨울잠 깨어나는 때에
난 춘곤증 못 이기는지, 실은 봄도 아주 온 건 아니지만 말야...
어떡하지?
누가 그러더라, 사년 전 ‘초딩 블로거의 첫사랑’이 참 좋았더라고.
그게 ‘처음’은 아니지만, 처음이 뭔지도 헤아려야 하지만
이제 와서 ‘처음처럼’이라며 결연한 표정 짓고 일어날 수 있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