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토유향 (蘭吐幽香) 2
휴게실 구석에 방치해놓은 난분에서 꽃이 터졌다.
노리고 있었기에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면?”하고서 내 방에 들여놨다.
무슨 상품(上品)을 가려 등급을 매기겠는가, 그냥 좋기만 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좋은 것, 가장 좋아하는 것이 최상품.}
언젠가 시들고 향기도 사라지리라는 것은 생각 밖이다.
지금은 좋기만 하다.
나중에? 내 방에 꽃이 있었고 향기로 채웠던 사실이 유전자지도에 새겨지리라.
사향노루 지나간 풀밭에서 사향내 난다는데
{김수환 추기경 가시고 나니까 “장미가 지고서야 그 아름다움을 알도다”라는 그 호들갑...}
잠깐 들렸던 자리라고 흔적이 남지 않을까?
{다른 난분 들여놓지 않는다면...}
언제 꽃을 볼지 모르지만
꽃 폈던 것이고 생명이니까 다시 필 것이다.
기약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필 것이다.
애타는 마음에 너무 공들이다가 손독오르지 않게
모르는 척하다가 아주 잊히지 않게
그렇게 가끔씩 물 줄 것이다.
사랑이 오래 살자면 신뢰를 먹어야하거든.
사랑은 헤아림(思量)이고 아낌이고 돌봄이고 돌아봄이고 다시 봄이다.
닿지 않아도 품속에 있음을 느끼는 넉넉함이다.
그러니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임의 미쁘심으로 뿌듯한 거지.
험한 세파 헤쳐 나오느라 모진 표정이 각인될 걸 두고 못되게 늙었다고 할 건 아니지만
착하게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 환한 얼굴이 제 것이 된 사람 있지?
그 오래 된 명화 말이지, 갈라진 잔금들 때문에 값이 떨어지지 않더라고.
봄아씨, 여름아짐, 가슬어멈, 겨울할망이 겹쳐보여도
처음 봤을 때 그때 그 임이더라.
金城(금성), ‘羅浮夢影(나부몽영)’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그러기도 하고
혹은 “여름밤의 짧은 꿈이 서러워” 그러기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