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추위
봄추위(春寒, 料峭)가 대단하겠냐만
그래도 봄추위에 설늙은이 죽는다거나 봄추위가 장독 깬다는 말도 있긴 하니까.
다 지나갔다고 여겼기에 제 기대에 속은 배신감이 있을 것이고
성급히 겨울옷 벗어던졌기에 추위랄 것도 없는 걸 견디기 어렵게 되었지만
이상한파라고 할 것도 없고
쌀쌀한 기운이 사흘 내리 가지도 않을 것이다.
오정이면 살얼음도 자취 감출 것이다.
진눈개비가 길목 막아서 잠시 주춤하였다고
올 것이 오지 않겠냐만
‘봄의 신앙’ 흔들리지 않는데도
당장 ‘그대의 찬 손 + 하염없는 눈물’은 어쩔 수 없구나.
서울에는 꽃소식(花信) 닿지 않았으니 꽃샘추위랄 건 아닌데
설중매라 해도 그렇지 남쪽에 이미 핀 매화들 어떻겠는지
망울에 맺힌 방울들은 어찌할 건지
공연한 멍울로 막막하다.
빈 수레 같던 ‘그대’라는 호칭에 의미를 담고 나면
무게를 못 이겨 똑똑 떨어진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톡톡 떨어지던 동백도 견디기 어려웠는데.
사월은 잔인한 달?
그때는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다가왔던 삼월이 양이 되어 빠져나간 다음이니까
엄살이 우스운 거지.
사순절을 가리키는 Lent는 본래 ‘봄’이라는 뜻이었다.
봄이 그냥 오는 것은 아니지. 사납고 괴로운 날들이기도 하고.
봄은 그렇게 오는 것이고
부활도 그런 고난의 시기 지난 다음이라야 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