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 1

 

사랑은 또 오는가?

그렇게 묻는 게 아니거든.

오면 오는 거니까.

살아있는 동안은 그러니까.

있는 사랑이나 지키라고?

그 사랑 새로 짓지 않고는 사랑 아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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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빼어난 것이라고 고를 만한 것은?

네, 다음에 만드는 것입니다.

{나중에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고 거의 다 되어가는 것

이제 나가도 인큐베이터에 넣지 않고도 살만한 것

낙관을 찍지 않아 내놓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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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려 練理文 청자의 부활을 꿈꾼다면서

지난 전시회(2008. 3. 대구)의 주제를 ‘淸磨의 夢’이라고 그랬다.

{‘청마’는 그의 호}

얼마나 연마하면 맑겠냐고?

맑다고 들여다뵘은 아니니까 투명하도록 닳아 엷어질 건 아니겠네.

그래도 그는 탐구하고 실험하며 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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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리문은 섞인 게 열 받아 이뤄지는 거니까

애초부터 ‘순수’ 고집할 건 아니데?

연탄재를 섞기도 했다고 그러대.

그게 원래 그런 것이기도 하니까.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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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섞은 것들 중에 향내 나는 흙도 있다.

00寺址에 밭을 부친 농부가 “무슨 흙이 씨를 품고도 싹을 안 내냐”고 푸념했다.

허투루 듣지 않은 이가 흙을 한 단지 담아왔다.

거기서는 몰랐는데 오래 뚜껑을 닫아두었다가 열어보니 향내가 났다.

추측이니까 뭐라 할 건 아닌데... 당시 벌레 침입을 막자고 천축국에서 가져온 고급향료가 아직까지?

이쯤으로 얘기 닫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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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다할 것만 만들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좋다하는 것을 만들어야 남지 않겠는가?

 

    사기그릇이란 사기장이 취미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세...

    기물의 색조나 형태란 언제나 시류를 따르는 법일세.

    사기장이나 화청장이는 그것을 명심해야 하네...

 

    -정한숙, ‘백자도공 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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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를 포함하여 명인들이 여럿 있다는 동네에서

제 할 일인 줄 아는 걸 하며 살면 되니까

그는 명예를 달고 사는 중심인물도 아니고 무관심과 냉소의 막을 친 국외자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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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과 재현?

남은 게 몇 개 안 되고 좋은 건 좋은 거지만

달항아리만 노래할 것도 아니고

막사발이라도 그렇지 사람들이 그때 그 심미안을 지닌 것도 아니면서...

 

그릇이란 보자고 만든 것은 아니었잖니.

祭器나 儀器 같은 것들도 있었지만 우선은 식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편리한 것이 예쁘기도 하면 다홍치마이었겠고.

{그게 왜 보물이 되고 고가품이 되어야 하는가.}

생활도자라, 그게 왜 생소하게 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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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 하늘이 파랗지만은 않은 때여서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을 노래할 것은 아니지만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건 날 정해놓고 하는 일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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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라고 푸르기만 한 것도 아니고 백자라고 순백도 아니고

뭐가 꼈다고 깎아내리는 얼룩은 아니거든.

구름 덮여 흐린 날도 좋고 비 내리는 날도 좋기만 하더라.

 

    푸른 하늘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그 위에 흰 구름이 떠 흐르기 때문이다.

    고려 사람들은 푸른 하늘의 아름다움은 느꼈어도 흰 구름의 빛남은 알질 못했다.

    인간은 하늘의 섭리에 그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것이다.

    하늘의 섭리를 지배하는 것은 푸른 하늘이 아니라 흰 구름이다.

    구름이 개이면 해가 비쳤고 구름이 몰려들면 비를 뿌린다.

 

    -정한숙, ‘백자도공 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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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 새재 넘어가는 길이 환하더니 보름이었구나!

달빛 모두 빨아들임직한 방에서 잘 수도 있었는데

일찍 일러주지 않아 불을 넣지 못해서 사람 받지 못했다고 그런다.

앞강 건너 뵈는 뫼에서 산벚나무 꽃잎 날릴 때에 오면 재워주겠다고 그랬으니

빚 받으러 가듯 또 가고말고.

{스승이고 후견인인 어른만 누우신 적 있는 감물 들인 황토이불은 걷어두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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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림 무단 점유하고 도벌하고 약초 캐며 소일하다가 잘못 찾아든 토끼나 잡아먹는

엉터리도사 행색에 산도적 수염 단 치들이 가마 지키기도 하더라마는

아하 그 아저씨는 참 끼끗한 양반이구먼.

상좌커녕 불목하니 하나 없어 혼자 다 챙겨야 하지만

교실에서는 제자 여럿 길러내는 분이다.

 

{사람숲에서 사람 내음 현기증 나도록 맡으면서는 작품이 나오지 않을 거라.

그렇다고 사람들을 아주 떠나고서는 사람답게 살 수 없는 것이고.

 

이미 아는 이들이야 어쩔 수 없고 반가운 이들 찾아오면 환대하겠지만

아무나 무시로 찾아가 어지럽히지 않도록 이름과 거처 알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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