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2
일부러 묵언을 선언했던 게 아녀요.
사순절 마지막 날 하루를 참지 못해 가쁜 숨 몰아쉬듯 입 벌린 것도 아녀요.
그간 바빴다는 말은 천박하게 들릴 거고요.
입을 열 때가 있으면 다물 때가 있는데 그걸 두고 ‘왜’를 설명할 것도 없겠고요.
숨기고 지켜야 할 사랑의 기쁨을 떠벌리고 싶을 때도 있고요
혼자 삭혀야 할 사랑의 아픔을 드러내어 관계없는 이로부터 위로를 기대하는 건 또 뭔지?
너 나 없이 불합리함과 모순을 한 아름 안고 사는데
남의 꼴 보며 혀 찰 것도 아니더라고요.
“그랬던 거예요” 하기도 그러니까
그게 그랬더란 걸 알아주면 고맙고
못 알아주고 아니었다고 그래도 할 수 없는 거지요.
일어난 것을 두고 다 같이 기억하는 건 아니니까
달리 해석해도 할 말 없는 거지요.
그저 제 느낀 대로니까 누가 뭐랄 것도 아니지요.
섭섭하다는 사람 달랠 것도 없고요.
어쩌겠어요, 다 그런 거지.
그냥, 그 동네 말로 “거시기한 건 다 거시기한 겨.”로 얼버무리면
“그려, 다 그려.”로 넘어가자고요.
그간 꽃샘(花妬娟)도 있었고 돌연한 더위도 있었는데
그래도 필 꽃들은 거르지 않고 다 피었고
피고 나서 그냥 달려있을 수 있나요, 다 졌지요.
피고 짐이 다 자연이고 꽃 떨어지면 열매 달릴 테니
아끼고 슬퍼할 게 있나요.
惜花若停簸 其奈生長何
花開雖可賞 花落亦何嗟
開落摠自然 有實必代華
-李奎報, ‘妬花風’ 中-
바람 일면 나부끼고 그러다가 찢기기도 또 날려가기도 하지만
그런 게 다 만물로 춤추고 악기 타게 하도록 바람이 맡은 일인데
특정한 것을 향한 악감정도 없겠으며, 거기엔 “Nothing personal!”
{鼓舞風所職 被物無私阿}
바람 불면 바람나는데
그걸 두고 바람피운다고 할 게 아니거든요.
{사람이 어찌 바람피우겠어요?}
저, 지금 주무시니까 조용해야 할 때인데...
아니다, 깨워드려야 하는가?
“장사한지 사흘 만에”라고 그러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제삼일에”라고 그래야겠지요.
{무덤 속에 계셨던 시간은 36 시간이 채 안됐을 걸요?}
Lent가 지나면 덩달아 봄도 가는가 싶어
‘봄날 1’이라고 했던 생각이 나서 뭐라도 후속편인지 부록인지 하나 덧대야 할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