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3
교정을 걷는데 맥박의 메트로놈 바늘이 급하게 나대는 것이었다.
그 왜 흰 카네이션이나 국화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채색하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
나무 전체를? 그런 몰지각한!
일단 증거수집용으로 똑딱이 카메라를 작동시킨 후 다가갔는데, 세상에...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야.
가지를 접붙였다면 어떤 가지에는 흰빛, 다른 가지에는 분홍빛 꽃을 달 수 있겠는데
한 가지에 색조가 각기 다른 분홍 꽃들과 흰 꽃들이 사이좋게 달려있기도 하고
분꽃처럼 한 꽃을 이룬 꽃잎들이 다른 빛을 띠우기도 할뿐더러
한 꽃잎조차 특정부분만 발그레 물든 촌색시 볼 같더란 말이지.
일단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다”고 그랬는데
살피기 전에 화낼 준비를 진행했음을 부끄러워하고는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다.
어린 학생들이 사진 찍어대며 떠들기에 “그것 참...” 하며 떠날 수밖에 없었다.
단내가 따라온다.
오늘은 라일락, 리라, 수수꽃다리, 미스 킴, 그런 이름들이 아니라 丁香이라 부르자.
그러고 나니 오규원 시인의 ‘한 잎의 여자’가 생각난다.
잘 빠진 여자 좋다고 그래도 마음에 둔 건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어떻기에?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있기는 있는데 가질 수 없는?
정물화가 아닌데 산수화도 아닌데
동영상으로 보는 맨유의 박지성 움직임 같은 걸 두고
무슨 물푸레나무 한 잎이니 그럴 게 아니라고.
좋기도 하고 그저 그렇기도 하고
살여울에서 넘어져 죽을 듯 말 듯 한 짜릿함으로 일어나려는 때도 있겠고
완만한 흐름에 접어들어 모처럼 숨 고르게 되었더니 따분한 표정 짓는 때도 있을 것이다.
당길 때도 있고 놓을 때도 있고
쓰지 않을 때는 풀어주기도 할 것인데
심드렁하다 그럴 것도 아니고
그렇다 치고 끝난 것도 아니다.
그러려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좋아지려니
그런 마음이면 잃지 않으리라.
독점욕과 질투 때문에 안달하고 짜증내면
맛 들기 전에 떨어진 낙과처럼
아깝다고 주울 것도 아니고
다시 붙일 수도 없더라고.
목 축이기에는 어림도 없지만
간만에 빗방울 떨어지는 걸 보면서
덩달아 속절없이 무너질 꽃 덩어리 생각하면 안 됐기도 하지만
촛불이 꺼진 건 날이 밝아서이고
꽃 떨어진 만큼 봄날도 익은 것이라서
섭섭함 같은 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