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지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견디기 어려웠겠지요. 또, 자결로 책임을 진다든지 용서를 구하는 방법을 암시적으로 존중하는 문화의 편린도 남아있는 게 사실이고요.
그래도 살 데까지는 삽시다. 죽기 전에는 살았고, 산 것은 살아가야 합니다.
LA Dodgers의 감독으로 붙박이 가구처럼 있다가 은퇴한 Tommy Lasorda가 Crystal Cathedral의 주일예배에 나와 몇 마디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제 살만큼 살았는데, 지나간 인생을 돌아보건대 딱 한 가지 훌륭한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하나님의 은총으로서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훌륭한 일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젊어서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The most wonderful thing I did was that I
didn't die young.)” 그러자 그 넓은 예배당을 채운 회중의 다수인 노인들은 ‘와아’하고 웃음과 함성을 터뜨렸습니다. 이어서 Lasorda는 말했습니다. “늙을 수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은총이라오, 다른 모든 부족함을 다 덮고도 남는 일이니 어찌 감사하지 않으랴! 그러니까, 여보시오, 우리 늙은 친구들, 자랑해도 되겠소이다. 취침 기도할 때에 늙을 수 있게 해 주신데 대해 감사합시다.”
그래, 갈수록 노령이 명예가 아니라 사회의 부담으로 여겨지는 세상이지만, 젊어서 죽지 않는 은총--그것은 아내를 과부로 만들지 않고, 아이들을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 키우지 않고, 또 손자들의 재롱도 보게 하신 은총입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살 것이 아닌 줄은 아니까, 그날을 준비할 수 있는 지혜에 이르게 하신 것도 은총입니다.
Robert Browning은 ‘Rabbi Ben Ezra’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Grow old along with me!
The best is yet to be,
The last of life, for which the first was made:
나랑 같이 늙어가세나!
가장 좋은 때는 앞으로 올 거니,
인생 초장이야 그걸 위해 만들어졌거든, 막장 말일세.
그리고, Charles Spergeon 목사님은 임종 직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정말 멋진 여행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더 진진한 여행이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아, 참 멋지네, 그렇지요? ‘유종의 미’라는데, 남은 생애-오늘은 그 첫 날!- 즐기며 삽시다. 그 다음에는? 더 좋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