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에 2 Take me home, country road
늘어선 경찰버스들 옆구리에는 “따뜻한 가슴으로 국민의 손과 발이 되겠습니다.”라는
표어가 붙어있다.
그 옛적에는 ‘민중의 지팡이’라고도 그랬는데
그러고 싶어서는 아니었겠으나 민중의 몽둥이일 때가 많았다. 민중의 곰팡이였기도.
연일 쉬지 못하고 ‘진압’에 나서는 젊은이들에게 따뜻한 가슴으로 냉수 한 병씩이라도.
‘시위’는 권리이기도 하고 시민불복종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행사하지 않는 권리가 더욱 귀하고
의무는 더 큰 대의명분에 종속하면 효력정지처분 받으니까
이게 무슨 육십 만세 사건도 아니고
서울광장에 꼭 가야하는 건 아니야.
‘탈 역사’가 가능하겠냐만
이젠 ‘Far from the madding crowd’라고 소리치고 싶은 거야.
손거스러미처럼 대단치 않으나 신경 쓰이는 거 있잖니
그렇게 양심의 밑바닥에서 꼬물거리는 게 없지 않지만
이젠 끼어들지 않기로 했어.
미친개 모는 대로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양떼에 섞이지 않을래.
그러면 이 찬란한 유월에
초록조차 힘들어 보이는 날들 오기 전에
뭘 하면 될까?
泉石膏肓(천석고황)이니 煙霞痼疾(연하고질)이니 잊어버린 글자 들먹일 게 아니고
“Take me home, country roads, to the place I belong” 그러면 되겠다.
외가인 여강 이씨의 뿌리를 찾아 양동마을과 옥산을 간 건 아니지만 어쩌다 발길이 닿게 되었다.
에고 그 회재(晦齋 李彦迪) 할아버지의 ‘똥폼 잡기’{죄송!}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離群誰與共吟壇 무리를 떠났으니 누구와 더불어 시를 읊을꼬
巖鳥溪魚慣我顔 바위의 새와 개울의 물고기 내 얼굴 익혔네
어머님 가신지 23년 되었지만 기일인데... 그러고 있다가 차편이 되어
가뵙게 되었다.
같이 누우셨구나.
나갈 이유 있으면 방편은 생길 것이고 그렇게 나가면 좋다.
응? 밤꽃이 어떻다고 킥킥거리나?
존 냄새 나던데 뭘, 도깨비시장에서 팔던 젤겐스 핸드로션 같은 살구 씨 기름내가 어떻다고?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흰 감자? 꼭 그렇지도 않던데...
좀 있으면 캐겠다.
옥수수는 잘도 큰다.
기다가 감아올리며 메꽃 피었고, 산딸나무 꽃도 아직 남아있다.
깊은 산엔 산목련 피었을 텐데...
가면 가는 거지
못갈 게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