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에 3 -중간시대-
마을 밖을 나가본 적 없는 붙박이 부녀자들에게도
가물에 콩 나듯? 보다도 드물게이지만 외지 남자가 나타날 때가 있거든.
유랑 악사? 씩이야... 동동구리무 장수였어.
왔다고 알리노라 하모니카를 불면서
다리를 들어 올렸다 내렸다 그러면 등에 멘 북을 북채가 때려줘서
지르박 스텝을 밟고 싶도록-에이, 뭐 그런 걸 알았겠냐만, 암튼 달뜬 마음으로 몰아가는-
분위기 잡아주는 사내가 들렸다고.
모내기와 보리 베기 겹치기 출연이 끝났다고 바쁜 게 지나가지 않은 날
하필 벌에 새참 내가야 할 때 들이닥쳐 고민허게 만드냔 말여?
그게 뭐 일과성 소나기, 그마저 우산 들고 나왔으니 젖을 일도 없는데
그렇게 여럿이 둘러선 중에서 어찌어찌 눈짓이 통했기에
거 뭐냐 ‘메밀꽃 필 무렵’에나 나옴직한 돌발사고도 발생하더라고.
그러고는 먼 훗날 방앗간은 허물어진지 오랜데 “물레방아소리 들린다”로 가슴이 뛰네?
한번뿐이었는데... 그럴 것 없다.
앉았다 일어섰을 뿐인데
두근거리며 몸을 섞던 꽃들
맘껏 벌어져 사태 지고
잠결에 잠시 돌아누웠을 뿐인데
소금 베개에 묻어둔
봄 맘을 훔친
희디흰 꽃들 다 져버리겠네
가다가 뒤돌아보았을 뿐인데
떠가는 꽃잎이라
제 그늘만큼 봄빛을 떼어 가네
늦도록 새하얀 꽃잎이
이리 물에 떠서
-정끝별, ‘늦도록 꽃’-
기쁨은 빠르고 설움은 끝없어{김안서, ‘가려나’}?
그럴 것 없다.
어찌 보면 須臾(수유)이고 어찌 보면 億劫(억겁)이네.
맺음과 흐름, 사랑처럼 눈물처럼
다 그런 것 아닌가.
저리도 무성하니 꽃 진 자리 다 가려졌고
중간시대, 그러니까 콩알만큼 한 열매들 부풀고 맛 들기를 기다리면서
슬퍼할 것 없다고.
1965년 봄, 동숭동 ‘본5’ 강의실에서 첫 수업 때였다.
‘Nachdenken’이 뭐 그리 어려운 말이냐고 그래서 교수님을 격분케 했다.
{화낼 일도 쌨네? 愛智者(philosopher)가 그리 흥분해서야...}
熟考(숙고)? 反省(반성)? 追考(추고)? 그럴 것 없고
‘되새김’이라면 되겠구먼.
{초식동물이 아니라면 할 말 없다.}
생각한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꽃잎들이 떠난 빈 꽃자리에 앉는 일
그립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붉은 꽃잎처럼 앉았다 차마 비워두는 일
-문태준 ‘꽃 진 자리에’-
그런 거야, 사랑은 ‘행위 중’이 아니고 훗날 생각하는 거야.
출혈이 멈추지 않는 건 자해 때문이고
아플 것도 슬퍼할 것도 아니고
돌아보며 기다리면 되는 거야.
뭘 기다리냐고?
초가지붕 하나 다 덮지 못하지만
“둥글박만 댕글이 달리더라.” {김소월, ‘넝쿨타령’}
그쯤에서, 그러니까 뭐라도 하나 달릴 때쯤 되면
끝나도 되고
끝났다고 ‘없음’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