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모드
1
꼼짝하기 싫다는 게
너무 고단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아니고
내가 챙기지 않아도 잘 돌아가는 세상을 느긋하게 바라보고
할 게 없어서 좋고 하지 않아도 되어 좋고
그러다가 뒤떨어지거나 돌림 받지 않을까 마음 씀조차 없다는 뜻.
동작 없이 상태로만 있음
그게 존재의 최상급이다.
그러니 사랑함도 사랑을 함은 아닐 것이다.
사랑에 빠졌다고 허우적댈 것도 아니고
가만있으면 뜨지 않겠는가?
숨고르기란 살아남는 길뿐 아니고
잘 사는 길이다.
{흠, guichanism의 요설이 과하도다.}
이렇게 평화로운 날 얼마만인가, 정말 ‘모처럼’이네.
아무 것도 안한 건 아니다.
간밤에는 욕실 여섯 면을 다 닦고 다림질도 했으니까.
그런 데에 손이 돌아간다는 게 안 하고도 살 수 있는 걸 취미삼아 건드려봤다는 뜻.
한국에 돌아와 살면 갈/냉 자주 들게 될 줄 알았는데
에고 갈비가 좀 비싸야 말이지, 혼자 다니기도 그렇고.
소증나면 병아리만 좇아도 낫다는데, 이렇게 더워서야 어디 뛸 수 있겠냐
“앞마당에 바둑이 쌔근쌔근 닭 쫓다 닭 쫓다 잠이 들고.”
자는 동안 배가 저절로 채워지면 좋겠지만...
찬밥에 물 말아 오이지 한 쪽 베어 무니
흐미, 쓴 나물 데온 물이 고기도곤 맛이 이셰.
{통통배 흉보지 않으면 탄수화물 과다섭취가 어떻다고? 말고는 다 괜찮거든.}
2
장보러 가는 길에 능소화가 곱다.
서울 주택가 담에는 뭐가 늘 타 올라가더라.
{장미 지면 능소화 피고. 그 전에는 등꽃이 있었지.}
그리움은 저렇게 늘어나는 거구나.
그렇게 가늘어지면 부러질라.
수동적인 기다림의 가엾음에 생각이 닿거든
왜 아파? 너만 아프냐? 그럴 게 아니지.
꿈지럭거려보자고 나온 거니까
꼭 뭘 사야 되는 건 아닌데
딱 우유 한 팩 들고 나오려다가 그건 잊어버리고 다른 병을 집었다.
먹고픈 건 사과, 그건 비싸니까
“제철 과일...” 그러며 참외 한 망
애걔, 아기주먹만하네... 그래도 여섯 개에 이천 원이라네.
3
여기 이렇게 덧붙일 얘긴 아닌데...
그 ‘逝去’(서거)라는 말 대통령 급에만 붙이는 건가
인민가수가 가셨는데 그냥 서부전선 이상 없다?
예전에 ‘세계 애창곡 집’이니 그런 책들 나돌아 다닐 때
‘Beautiful Dreamer’를 ‘꿈꾸는 가인’으로 옮긴 것도 있었다.
“아름다운 꿈 깨어나서”로 시작했지만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이 아니고 꿈꾸는 사람-잠들어 있는 사람-이 아름답다고 여기기에
beautiful dreamer라 했고, 하니까 ‘꿈꾸는 佳人’이 맞네.
{허용한다면‘嘉人’으로 쓰고 싶어.}
그는 참 괜찮은 歌人이셨다.
{성악가? 그런 말이 다 있네.}
歌客이라 해도 좋겠다.
다 그렇게 가는 거니 過客이겠고
노래하며 살다 가셨으니 ‘노래하는 순례자’라 불러드리자.
{그게 무슨 은관문화훈장 추서인가보다 낫지 않은가?}
{그림 출처: 국민일보 쿠키뉴스}
오현명 선생님.
중학교 2학년 때 선양 서탑교회에서 찬송가 '예수 나를 오라 하네'를 부른 게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선 것이라고 밝히신 바 있다.
부르신 분께 나아가셨군요.
{나는 1953년 환도 서울 ‘시민위안의 밤’에 불려가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를 불렀다.
일찍 데뷔했지만 그게 마지막 무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