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림(祈林)을 지나다가

 

1

 

우산 챙겨 나온 걸음이었는데 장마 중에도 볕들 날 있어 잘 다녀왔다.

돌아오니 천둥 친다.

“집에 있으면 폭풍우는 좋다” 하나

악천후에 길 위에 섰어도 좋으면 좋은 것이다.

돌보든지 기대든지 함께라면 좋겠고

어쩌겠는가, 홀로라도 좋아라.

 

머물면 떠나고 싶고 가다가 집 생각나니

형편대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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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빨거리고 다닌 데가 많으니

원효대사나 매월당이 여기 있었더라는 흔적도 산재하다.

 

그가 나 닮았다고 할 수 없어 내가 그를 닮았다고 그러더라도 그렇다.

소년이 위인을 기리며 따라가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을 늙은이가 버리지 않았다면

아휴, 웬 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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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이고 싶지 않은 사람 있겠는가

사랑하면 매이게 된다.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그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아주 어렵게 여겨진다면

에고, 사랑이라도 불편하겠네?

그러니 자유의 행사는

“남들은 자유를 좋아하지만...” 노래를 부르며 매이든지 매이기 싫어 사랑하지 않든지

거기에서 끝나고 만다.

사랑하지 않음에 대한 불이익이 중벌 수준을 넘어서니까

자유 실험은 언제나 자유로부터의 도피로 끝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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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鎭南樓(진남루) 柱聯(주련)은 금강경에 붙인 야보스님의 게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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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何言不會?

딱 그 구절만으로는 “어찌 만나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이상 풀 게 없다.

그때 그랬지, 평행선은 만나지 않는다고.

그게 평행선의 정의이니까.

만나지 않는다고 관계가 없는 게 아니고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그림자 같은 벗 하나이”가 거기 있을 수 있겠다.

확보된 거리의 아름다움처럼 고통스러운 것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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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다 적는다면 이렇다.

 

遠觀山有色 近聽水無聲 春去花猶在 人來鳥不驚

頭頭皆顯露 物物體元平 如何言不會 祗爲太分明

 

難難難할 것도 없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易易易로 자기를 속일 것도 아니고

“어찌 알지 못한다 하는가 너무도 분명한 것을”이라는 소리 듣고도

도리도리 고개 저으면 그만이지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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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봄은 갔건만 꽃은 남았다고?

“이 꽃은 그 꽃 아니다”할 게 무엔가?

배롱나무 꽃이 백일 붉은 게 아니고

떨어져도 자꾸 피니 시들지 않는 것 같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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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오래 되고 이만큼 아름다운 사원이 이만큼 조용한 게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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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에 살리라~해도 비이슬 피할 데는 있어야 하는데

하 이런 데가 있었구나.

사방 트인 데다 아래로는 끝없이 펼쳐진 蓮池(연지)다.

꾀꼬리 두 번 울 동안 찾아오는 이가 없어

졸듯 사랑하듯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세월 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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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바라보니 산은 색이 있건만

가까이 들으려니 물은 소리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