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을 지나다가
1
장마철이라고 매일 그리고 진종일 퍼붓는 게 아니고 볕 날 때가 있지.
그래도 이건 너무 좋은 날이다.
빛의 입자가 가득 채운 공간을 너무 눈부셔 감은 눈으로 날아가는 새 같은 기분.
Chocolate croissant과 apple danish, 거기다가 금방 간 커피까지 가세한 아침
그런 때도 있는 거구나.
비 좋다는 사람도 비 갠 후라면 더 좋다 하지 않을까?
이슬이 강 되어 흐르듯, 그것도 잠깐 사이에 그렁그렁에서 좔좔로 쏟아내는 사람아
실실 웃는다고, 가락까지 새어나온다고 화내지 말게.
오 맑은 햇빛 너 참 아름답다
폭풍우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해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2
지나는 길에 양산에서 일박하게 되었는데
마침 통도사 코 앞, 일주문이 내다보이는 곳에서 묵었지만
다음날 아침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복전함에 성의껏 넣으면 되지 입장료(?)는 왜 받냐고?
치사하게 돈 내기 싫어서는 아니고 갈 길이 바쁘니까, 간 적이 있으니까,
가을에 내원사 갈 적에 통도사에도 들릴 거니까.}
천성산이 깊긴 깊구나.
웬 도롱뇽 지킴이들 때문에 소란 떨었는지...
홍룡폭포, 크진 않아도 예쁘다.
시원하다.
3
춘추공원이라...
충혼탑이 있고 장충단-누구를 혹은 무엇을 향한 충성인지 흐릿하긴 하다만-이 있는데다
이름을 ‘春秋’라 해놓고서야 그 ‘역사 바로 잡기’인가에 걸려들지 않을 수 없어
뒤늦은 친일 시비와 더불어 ‘이원수 노래비’를 철거하라는 논란도 인다고 한다.
{아휴, 忠孝의 신라인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그거 애국가보다 더 자주 부르던 노래였는데...
4
상북면 신전리에 천연기념물 234호로 지정된 이팝나무
수령이 얼마나 됐는지는 모르고 높이는 12m, 줄기 둘레는 4.15m.
크기나 오래 묵은 것만으로 치자면 All-stars에 선발될 만하지 않지만
이팝나무가 수백 년씩이나 자라고 그런 게 아니니까.
도반처럼 같이 머문 건 푸조나무이다.
이제 와서 “이밥에 고깃국 먹어봤으면 원이 없겠다”랄 사람은 없다. {적어도 ‘남조선’에서는 말이지.}
옛적에 보릿고개 끝날 때쯤 배고파 잠이 안 오는데 마침 달까지 밝은 밤이라면
하얗게 핀 꽃 수북이 단 나무가 고봉으로 담은 밥사발 같이 보였겠는지?
여름으로 들어설 때 꽃이 피기에 ‘立夏木’이라 하던 것이 ‘이팝나무’로 불리게 됐다는 설도 있다.
살 날 더 남고 싱싱하기로는 전날 지나친 양포초등학교에 있는 나무들을 꼽을 수 있겠다.
尤庵과 茶山이 유배되었던 장기 좋기만 하더라.
유배지 絶境이야말로 絶景이고 들앉아 다잡고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기’에 맞춤인 곳 아닌가.
5
잘 생긴 일주문 지나 범어사에 잠깐 들렸다가
버스 타고 올라왔다.
후다닥 여행 走馬看山으로 그렇게 지나갔다.
파란 하늘에서 여우비 몇 방울 떨어지듯
잔잔한 마음에 파문 일기도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