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날
1
6개월에 한번은 나갔다 와야 하고
{기류민이거든.}
가면 거기도 집 같은 데가 있고 가족과 반가운 얼굴들 있지만
그래도 떠난다는 건 맴이 쪼깨 껄적한 거다요.
냉장고 비운다고 말라비틀어진 채소들 쓸어 넣은 찌개 올려놓고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연기와 탄내가 시민항쟁 현장에서 분무한 최루가스 수준이다.
이것저것 챙기는 중에 베란다 구석에 방치한 난초, 가끔 놀래키던 것이
글쎄 꽃대를 올렸지 뭐야.
겨울 지날 때쯤도 아니고 그 더운 베란다에서 말이지.
좋은 것도 아니고 별난 것도 아니지만 버리기는 아까워 챙긴 건 방치하게 된다.
귀하신 몸은 돌보지 않으면 제 성질 이기지 못해 죽고말지만
미운오리새끼, 왕따, 천덕구니야 모하비사막의 선인장처럼 꿋꿋하니 버티다가
생체리듬에 맞춰 때 되면 꽃피우더라고.
그건 사랑 아니니까 방치한 사랑? 그런 건 없다.
숨겨진 사랑 너무 억울해서 숨은 자리에서 나오고 싶어 하다가
그러면 우리 관계는 끝이라는 협박에 자라모가지 집어넣듯 하며
목울음조차 서둘러 재우는 걸 뭐라 부르는지
‘슬픔’이라면 너무 가볍게 들리네.
-이상 난초를 대변하여-
너무 미안하고 또 기특해서 화분 씻고 잎을 닦아준다는 게
아 그만... 깨빡치고 말았네.
다리 다친 말을 안락사 시키자는 것도 아니었고, 에이 그럴 리가...
고의는 전혀 개입되지 않았거든.
죽지 않을 테니 환생키를 바랄 것도 아니고
돌아와서 다시 보자.
그때 꼬리치며 반갑다는 누렁이처럼 다가오길 바래.
{그런데 오늘 뭘 깨고 태우고 그러는구나? 별일 없겠지.}
2
기다리는 이 있어 떠난 이는 홀로 걷는 길이 쓸쓸하지 않을 것이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 아니라도
가도 가도 황톳길이면 또 어떻겠냐고
걷다가 달에게 한 잔 권하고 제가 마시고
달 가렸다가 황급히 비켜서는 구름에게 권하고는 또 제가 마시다가
떡심 풀려 주저앉고 눈꺼풀이 무거워지면 억지로 떼려할 것 없고
찬이슬에 깨어 일어나서 걸을 만하면 또 걸을 것이다.
그렇게 가면서 머리 말리는 뜨거운 햇볕과 몸속까지 적시는 비를 만나도
나쁜 일이 생기기에는 너무 좋은 날이라며
기다리는 얼굴 떠올리고는 입가에 웃음 달 것이다.
Life is a path lit only by the light of those I've loved
By the light of those I love
-Tom Waits, ‘Jayne’s Blue W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