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가는 여름날 2
너무 더워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일찍 일어나게 되니
새벽부터 배고프다.
해주는 빵 먹고 밥 먹고 국수 먹고도
기운 차리지 못해 빌빌 빈둥빈둥하는데
해는 길고 더위는 수그러지지 않아
세월은 그리도 빨리 흘러가는데
여름날 하루는 이리 더디 가는지
내 참...
이상국의 ‘국수가 먹고 싶다’
추위 느낄 때쯤 읽어야 더 맛나겠으나
아예 땀 빼기로 작정했으니 통풍되지 않도록 행도 가르지 않고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 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더?
응, 더.
하루 일 끝마치고
황혼 속에 마주앉은 일일노동자
그대 앞에 막 나온 국수 한 사발
그 김 모락모락 말아 올릴 때
남도 해지는 마을
저녁연기 하늘에 드높이 올리듯
두 손으로 국수사발 들어 올릴 때
무량하여라
청빈한 밥그릇의 고요함이여
단순한 순명의 너그러움이여
탁배기 한잔에 어스름이 살을 풀고
목 메인 달빛이 문 앞에 드넓다
-고정희 ‘그대가 두 손으로 국수사발을 들어 올릴 때’-
밥값보다 비싼 커피 한잔 들어야 할 일 마친 것 같은 게
어디 된장녀뿐에게랴
허니 국수 들고도 카페인 섭취하는 걸 가외지출로 칠 것도 아닌데
별다방 콩다방 아니면 어때?
그냥커피를 마시는 토요일 오후
산자락 옹긋옹긋한 무덤들이
이승보다 더 포근하다
채반에서 첫잠 든 누에가
두잠 석잠 다 자고
섶에 올라 젖빛 고치를 짓듯
옛날다방에서 그냥커피 마시며
저승의 잠이나 푹 자고 싶다
-오탁번, ‘옛날 다방에서’-
커피 아껴 엷게 탄 거야 나도 딱 질색이지만
무슨 gourmet coffee 별나게 찾는 것도 웃기는 얘기.
그냥커피 어떻다고?
미스 김, 진하게 뽑아줘~ {꽁피 말고.}
오탁번! 하니까 “원숭이 X구멍은 빨개”로 시작하는 연상의 고리에 따라
그의 시론이랄까 뭐 그런 게 떠올라서
시는 저녁연기 같은 것이다.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마을, 초가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가 바로 시다. 해가 지는
것도 모른 채 들에서 뛰어놀다가 터무니없이 기다랗게 쓰러져 있는 내 그림자에 놀라 고개
를 들면 보이던 어머니의 손짓 같은 연기, 하늘로 멀리멀리 올라가지 않고 대추나무 높이까
지만 피어오르다가, 저녁때도 모르는 나를 찾아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논두럭 밭두럭을 넘어
와서, 어머니의 근심을 전해주던 저녁연기, 이게 바로 시다.
저녁밥을 먹으려고 두레반 앞에 앉으면, 솔가지 타는 내가 배어 있는 어머니의 흰 소매에서
는 아련한 저녁연기가 이냥 피어오른다.
난 뭐 조악한 모이도 마다 않고
일단 맘먹으면 워낙 잘 견디니까
에어컨 없어도
삼계탕 안 먹고도
폭염주의보 내린 날들 잘 넘겼다.
먹는 얘기 나와서인데
미국 여행 중에 $ 2.50이면 서브웨이 샌드위치에 커피까지 끼어주더라.
보통커피로는 아주 그만이더라.
$ 1.50 과일 샐러드도 훌륭하더라.
식비만으로 치자면 없는 사람 살기에 미국이 낫겠더라.
고샅으로 저녁연기 깔리던 풍경 떠오르고
어머님 목소리 들리는 듯하더니
먹어도 늘 허기졌던 기억까지 새롭다.
{아직 배고프다! 히딩크 급 인물이 뱉어야 제호(題號)로 뽑힐 테지만
배고픈 사람이 배고프다는 원초적 본능을 어쩌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