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량역 지나며
‘아직 아니’에서 ‘이미 아니’까지 초록의 여정은 길다.
초록도 이젠 지칠 만하고 단풍 들긴 이른 때라서
넘치는 사람들 피해서 다니기에는 좋지 않을까 싶다.
“옥수수 밭은 일대 관병식(觀兵式)입니다” 그런 말 한 사람도 있었지.
군락지랄 것도 없이 그저 고속도로 옆에 무더기로 피어난 마타리가
일부러 오와 열을 맞춰 심지 않았겠는데도 황군(黃軍)의 퍼레이드 같다.
{갑주 소리는 들리지 않네?}
힘겹게 버티는 달맞이꽃들 보니 어느 쪽이 본대이고 보충대인지 알만하다.
{그렇게 젖은 건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생각나서?}
이게 무슨 머피의 법칙도 아닌데
청풍호 찾아들었더니 진종일 비 내려 뿌옇기만 하다.
금방 날 풀릴 것 같지도 않고...
제천에서 울산 가는 버스에 승객이라고는 달랑 나 하나이고 보니
괜히 죄 짓는 느낌일세, 츠암~ 내.
{모든 시외버스, 고속버스는 국고보조로 운행한다니까...}
파란 하늘로 개이지 않았어도 가까운 산들은 보일 정도니
포연(砲煙) 가시는 전장이랄까 그렇게 안개도 걷히고 있다.
젖은 하늘에 편지 쓰자면 번지니 알아볼 수 없을 것이고
구겨지기도 하고 찢어지기도 할 것이다.
좀 지나면 개지 않겠는가, 그러면 편지 쓸 일 없겠네?
파안대소는 말이 안 되는 거지만... 싱긋 웃으리라.
좋았다고, 원망할 일 없다고, 돌아오면 좋겠다고.
{그리 되지 않겠지만 꿈도 꾸지 못할 건 아니니까.}
그러기만 하면 편지 쓸 일 없이 다시 만나고 그러겠네?
맞아, 가을은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는 철인데
멀쩡한 이들 일없이 헤어진다는 건 말이 안 되거든.
이름 있어 불러주게 되지만
‘사평 역’이라는 게 있기나 한 거냐고?
이름 있다고 실재는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있기는 한데 알려지지 않은 것들은 그럼 실재이겠냐고 또 물어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렇게 입가에 옅은 웃음 달고 히죽거리는데
뒤로 돌아가는 필름들을 정지시키는 그림 한 장이 딱 들어왔다.
작고 예쁜 엉덩이 같은, 반듯하고 단단한
모량역이구나.
문인수 시인은 모량역을 두고 몇 곡이나 뽑았다.
시꺼먼 기차 소리가 무지막지 한참 걸려 지나간다. 요란한 기차소리 보다
아가리가 훨씬 더 큰 적막을
다시 또 적적, 막막하게 부어놓는다. 전부,
똑 같다. 하루에 한 두 사람,
누가 떠나거나 돌아오거나 말거나
모량역은 단단하다.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되다.
-‘모량역’ (부분)-
역무원도 두지 않은 시골 간이역은 사람 같다. 출찰구 옆 목조기둥 심심한 키가 투명
아크릴 집표함만 달랑, 낮게 차고 있다. 그 전엣 것 한 겹, 좀 전엣 것 한 겹, 요새 것 또
한 겹, 규격이며 지질이 각기 다른 차표들이 시루떡처럼 한데 차곡차곡 쌓여 있다. 가만,
이게 도합 몇 년치나 될까. 편도에 잠시, 잠시 묻은 손때도 결국 괄목할 만한 두께구나.
새로 난 길, 신판 절개지 앞에 선 것 같다. 모량역의 괴춤엔 삭은 무지개가 한 판 선명하
게 들여다보인다.
-‘모량역의 지층’ (부분)-
모량은 박목월의 고향으로 시인이 대구로 통학하며 이용하던 역이다.
동심에 모,량,역 세 글자 새겨졌기에 노래 하나 남겼다.
옛날 촌역(村驛)에
가랑비 왔다
초롱불 희미한 밤
가랑비 왔다
초롱은 무슨 초롱
하얀 역(驛)초롱
모량역(毛良驛) 세 글자
젖어 뵈는데
옛날 촌역에
가랑비 왔다
초롱불 희미한 밤
가랑비 왔다
-박목월, ‘옛날과 가랑비’-
(‘열차사랑’ 홈페이지에서 펌, 문제 되면 내리지요)
간이역은 무정차역이 되었고 이년 전에 폐쇄되어 역사만 남았다.
수익사업으로 눈이 벌갠 지자체에서 어쩌자고 그냥 내버려두는지?
문학청년 목월과 지훈이 첨 만난 데는 경주역이라던가? 아무러면...
{돈 많이 드는 문학관 크게 지을 게 아니고 시 카페 같은 걸로 꾸며 놓으면
감성 브랜드스토리로 경쟁력 있는 상품 하나 나올 것 같네만.}
‘목월에게’라는 부제로 ‘완화삼’을 지어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를 보내고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를 지어 화답하던
그 촌스럽고 싱그러운 우정을 나와 재연(再演)해볼 사람?
바쁜 걸음이라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 다 못 걷는다마는
겨울에 칠백 리 보태어 걸을 때 다시 들리고 싶다.
스침이라고 잊히는 게 아니라며.
뭘 자세히 물어보고 자시고 할,
그런 인생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심사일까, 대합실을 빠져나가는 저 열 두어 걸음,
마디마디가 전부 일생일대 아니냐.
-문인수, ‘모량역의 겨울’ (부분)-
(‘열차사랑’ 홈페이지에서 펌, 문제 되면 내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