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Song II
‘Kind of September’가 어떤 시절인지
노랫말처럼 ‘When life was slow and oh so mellow’였는지
있기는 있었는지 갸웃하다가
일부러 기억해낼(try to remember) 것도 아니고
그런 게 있다면 지금이 그런 때 아닌가 싶기도.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에이 눈물 없는 때가 있겠어, 지금도 그렇고.
물 없이 음식 짓지 못하듯
그날그날 우린 눈물로 지은 하루를 먹고 살잖니?
내게만 있는 것도 아니고 진밥, 된밥, 죽도 밥도 아닌 것도 있을 것이다.
아무도 울지 않는 때(that no one wept except the willow)? 없다니까.
울지 않는 사람? 없다니까.
슬퍼서 울든지 울어서 슬프든지... 슬퍼?
슬픔은 슬픔이고 날은 계속되고
슬픈 중에도 웃고 웃으면서도 슬픈 거니까
슬픔에만 장단 맞출 건 아니거든.
슬픔을 비웃는 게 아니고 슬픔 조오~치
그렇게 슬픈 눈은 상강 쯤 하늘빛으로 그윽하더라.
슬퍼도 그만한 슬픔이니까
더 슬플 때 돌아보면 지금이 구월 무렵(kind of September)일 거라?
구월은
경계선이다.
{그게, 그러니까 선이라는 건 보긴 해도 없는 건데다가
수평선 모르는 사람 없지만 가보거나 만져본 사람도 없더라.
경계선이라 하기가 좀 그렇다.}
여름 갔다고 해도 낮에는 덥고
힘겨워도 자리 지키는 해바라기와 갓 피어난 코스모스가 더불어 있는
공존과 병렬의 마당이기도 하고
밤새 눈에 띄게 달라졌음을 실감하는
변화의 시대이기도 하다.
무엇과 무엇 사이라 경계라 하는지
오는 것이 가는 것이 되니까
지금이 늘 경계이고
그러니 세월은 경계의 잔영이라 할 것인지?
여름과 겨울 사이에 가을이 있으니까
여름과 가을이 구월에 중첩했으니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공존과 부재, 긍정과 부정, 저항과 협력, 선택의 시점이면서
결단을 유예하는 완충지대인 셈이다.
한겨울에는 구월을 돌아보며 그때 좋았다고 하겠지만
정작 구월에는 겨울을 내다보며 한숨 쉬는 이들이 많을 것이고
겨울에는 언 땅 밑에서 꽃눈 트듯 희망을 키우는 철이니까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야 언제라도 구월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울 일 있어도
“그때 좋았어.”로 남을 날들.
when my heart was young and gay
놀지 않을 거면 문 열어놓지도 말 건데...
구월 가기 전에 인사라도 드릴 겸해서...
다들 가을 잘 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