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온다고 그러고서 안 왔단 말이지?
올 수도 있다고 그랬으니 안 올 수도 있는 것이고 늘 반은 맞추는 셈이네 뭐.
그게 하늘이 의지를 스스로 천명한 것이 아니니까 ‘변심’을 지적당할 주체도 없는 것이고.
서울 시내에서 눈 보지 못했어도
수도권 쯤으로 넓히면 지금 어디쯤에선가 내리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대청에 올랐던 돌이는 전화 터질 곳쯤에서 눈 밟는다고 소식 전하더니
간밤 경아는 지리산 자락 어드메서 ‘눈 내리는 밤 숲길에 서서’를 읊더라.
방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보낸 적 없는 이조차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로 오그라드니
누구라도 눈을 맞고 있는 것이다.
피할 마음 아니라면 하냥 내리는 것이다.
“바빠 아빠 나빠” 그럴 애들 없는 늘그막에
무슨 할 일 많다고 가을길 나서지 못했는지
겨울나그네 꿈꾼다고 떠날 수는 있겠는지
샛노래야 하는가 싯누렇기만 해도 좋은 벌판에서
메뚜기 잡는 애들처럼 같이 뛰놀고 싶지만
나란히 걷는다고 둘이 하나 될 것도 아니고
그러자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와’는 왜 들어갔겠냐고?
혼자 가면 된다.
도반(道伴)이라고 달라붙은 이들로 얼마나 힘들던가.
{부르지 않았고 일부러 뗄 것도 아니다.}
눈은 그런다.
갈 생각 안 했었어도 기다렸다니 미안하다고.
거기서 첨은 아닌데 ‘첫’으로 꼽는 이들에게 진실 밝히기가 뭣하더라고.
지난 일 생각나고 하고 싶은 일들 꿈꾸는 거지 눈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알면 됐다. 그런 줄 알고도 때 되면 오겠다니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