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서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고 그러면서 웃는다고
너는 왜 울지 않고? 묻기에
지금 이렇게 흔들리고 있지 않느냐고 대꾸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라고 울지 않는 건 아니라고
더러는 몇 방울 天淚(천루)로 떨어지기도 한다고 그랬다.
모퉁이가 닳거나 말려 올라간 공책에 겨우 남은 잉크 색 같은 마른 풀들
탈색한 생명의 허물들이 저렇듯 널려있다면
법의학자 눈 아니라도 살인의 추억의 검붉은 흔적을 어렵잖게 찾아내리라.
하다못해 무너진 탑이나 주춧돌이라도 남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럴게 아니네.
사는 게 어디 볶은 땅콩껍질 벗기듯 수월하랴
유품 없다고 명백한 치열함을 무시하지는 말게.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그랬네만
길다고 다 슬픈 건 아니고
Loser가 아닌 자들이야 높으면서도 당간지주처럼 굵고 당당하던 걸.
{그래서 더욱 밉살스럽고 말이지.}
서 있는 것들, 꺾어지지 않았어도 늘 흔들리는 것들
생명 빠져 나갔어도 살아있듯 움직이는 것들.
“풀은 마르고 꽃은 지나” 그런 말씀도 있고
“세상 지나고 변할지라도”라는 노래도 있지만
諷經(풍경) 소리 들리니 입 벌리지 않아도 되겠다.
바람 때문일까 물비늘만 봐서는 거꾸로 흐르는 듯하다.
返本還源(반본환원)은 갈 데로 나아가는 것이지 거스름은 아니니까.
완전한 동그라미는 없다.
있다 하더라도 정면에서 바라보지 않고서는 타원형으로나 다가올 것이다.
그래도 워낙 큰 것을 멀리서 보면 이지러지지 않은 것 같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