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 탐구
빛이 빛깔로 나뉘지 않으면 그냥 밝기만 할 것이고
빛의 결여를 어둠이라 부르는데
어둠은 검고
검은 건 흑색이니까
그럼 흑색이 무색
아닐 것이다
빛을 반사한다면 빛깔을 띠지 않게 되고
가리켜 백색이라 하겠는데
백색은 무채색이나 무색이라 할 수는 없다
무색투명하다고 붙여 사용한다고 해서
무색이 투명은 아닐 것이다
무색이긴 해도 보인다면
뭘까 그게
霧塞한 겨울날
無色 탐구가 어려우니 참으로 무색하구나
그냥 안개에 감기도록 내버려두자
하늘은 하늘빛이지만
하늘빛이 꼭 파랑이겠냐고
Nicoletta Tomas 그림들, Lily Cole의 란제리 색, 물망초, 그런 baby blue, 고운 색 아님
하늘이 하늘대로 있는 날
{언제는 무너졌던가}
더 적실 필요 없어 눈물은 흐르지 않지만
霧色-잿빛이나 은빛은 아니니 안개빛이라 하겠네-이라 저게 無色 아닌가 싶은 날
종강했다고 마냥 게으름피우다 하악하악아저씨 꼬라지로 나와서는
대낮에 등불 켜고 아덴 거리를 나다니듯 무색 탐구에 나섰다
탑골공원 낙원시장께 어드메 천상병 아재가 들리던 데를 찾다가
에고 나야 그런 데서 한 보시기만 들어도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나던 걸
못 찾겠다 따까리 신 포도는 안 먹어 그러고는 종로통을 하염없이 걸었다
김상옥 시인 아끼던 항아리 빛깔 같은 게 아닐까
누르끄레한 벽을 꼬물거리며 올라가다가 떨어지던 것들이 그렇지 않던가
골 때리던 카바이트 막걸리가 비슷한 색 띠지 않았나 그러다가
아하 색이 없어 무색이라는데 아직도 色界에서 허덕이는고
죽비에 얻어터지고는 원위치
응 얼어붙은 거리에 웬 계란꽃
이런 게 나온 지 오래 되었습니까
어디서 살다 오셨기에
종묘 앞 할배들 바둑판도 기웃거리고
시들었어도 기운 쓰고픈 남정네를 유혹하는 꽃뱀들에게 백반가루를 뿌리고
청계천 어느 다리 밑에서 접선하는 아이리스 첩자를 색출한다고 눈알 굴리다가
다리쉼 하자고 들어서니 만원일세
우리 그럼 합석합시다
왜 나왔는지 잊어버렸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니까
괜찮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