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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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이라고 말하기에는 그렇다.

춥지 않으니 따뜻하다? 그런 건 아니니까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런 겨울은 없다.

겨울은 겨울.

겨울 같지 않은 겨울? 그건 그럴 수 있겠다.

 

모든 것이 다 보이는 낮이라면 더 아름답겠다? 그렇게 말할 건 아니거든.

밤은 밤대로 아름다우니까, 또 그런 아름다움이라면 낮에는 느낄 수 없으니까.

선지에 먹 스미듯 어둠이 내리깔리고 번짐이 퍼져 다 까매지더라도

Black & black으로 덮을 수 없는 데는 꼭 남더라.

 

한 두름의 마지막 굴비 빼내 구워 먹는 맛 같은 이맘 때

가을마당에 빗자루 몽당이를 들고 춤을 추어도 농사 밑이 어둑하다는데

한 해 잘 살았으면 됐지 무슨 후회와 상실감으로 마음이 무거울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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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개는 홀딱 벗었고 더러 마른 잎 몇 개를 달고 있긴 하지만

멀리서 수형만 보거나 다가와서도 수피만 보고 무슨 나무라 하지 못하니까

그저 잡목이라 그러고 만다.

듣기 좋고 시어로 채택되어 이름만 아는 은사시나무, 물푸레나무

서어나무, 박달나무, 하얀 껍질에 상처가 많은 건 그저 자작나무

떡갈나무, 상수리, 갈참, 졸참, 굴참, 물참, 돌참, 신갈나무 척척 구별할 게 아니라서

그냥 참나무라 부르는 거지 ‘참나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더만

아무러면 어때 내 나무 아닌 다음에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누구라도 그렇게 아는 이름이 무슨 소용?

관계를 맺으면 마음에 뿌리내려 ‘참나무(眞木)’로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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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건 사람들 얘길 거라.

절대충성을 요구하는 절대 권력으로 사랑을 묶어둘 수 있을까?

전에는 상대적인 가치를 절대적인 가치로 오인함을 우상숭배로 여겼는데

나 아니어도 된다고 하는 게 지순한 사랑 아닐는지.

네 마음을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큰사랑 알면 비로소 자유를 얻게 되리라.

 

날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럴 수는 없을 거라.

마지막에 이르러 “내가 목마르다” 그러시더라.

 

겨울 숲에 들어찬 나무들 중에서

시몬도 유다도 거두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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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Imitatio Christi(遵主聖範)는 참사람 되는 길인데

사람이라고 다 사람 아니지만

사람이 사람 되는 게 어찌 안 될 일이겠는가.

 

刻鵠類鶩(각곡유목)이란 빈정거리자고 하는 말이 아니고

최선을 구하다 얻지 못해도 그만하면 됐다는 뜻.

본은 고운 거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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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왜 그렇게 되는 걸까를 알면 왜 그렇게 되었을까는 문제로 떠오르지 않는다.

 

바람은 제가 머물겠다 하여도 지나갈 것이며

잡겠다고 하여도 흘려보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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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기나무들 사이로 토끼들이 뛰어다닌다.

 

“마른 잎은 굴러도 대지는 살아있다”는 식의 명문 취향 과한 교훈조 말씀 필요 없다고 그러다가

“사슴을 잡으러 가는 길에 토끼가 눈에 띈들”이라는 생각으로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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