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에서 끝난 봄나들이
‘봄추위’와 ‘늙은이 근력’은 붙어 다니는 말, 오래 가지 않고 믿을 것도 못된다는.
봄눈이 그렇지 뭐.
야비하도록 난폭한 눈보라가 전국을 강타하던 아침에 그래도 떠났다.
그리 독한 맘 품을 것도 아니고 해서
황지우의 ‘눈보라’는 지우려 했는데 몇 줄 생각났다.
“슬픔은 왜 독인가/ 희망은 어찌하여 광기인가//
뺨 때리는 눈보라 속에서 흩어진 백만 대열을 그리는/ 나는 죄짓지 않으면 알 수 없는가”
매임에서 자유롭기를 바란다면서 딱 그날이어야 할 것을 고집하는 게 아니고
그냥 가고 싶으니 떠난 거지.
일박이일에 남도를 주유할 건 아니나 주마간산으로 봄기운이나 쐬려 했던 것이다.
들린 데 일일이 읊기도 그러니 먹은 음식으로 미루어 짐작하게.
서대회/ 금풍생이 (점심), 게장백반 (저녁), 전복죽 (아침), 짱둥어탕/ 꼬막정식 (점심),
파전 (간식), 전주가 아닌 진주비빔밥 (저녁)
꽃소식은 전해야겠지?
매화마을은 다음 주말이 한창이겠으나 미어터지는 사람들 피하자면 22일쯤이 어떨는지?
금둔사 납월매는 끝물, 선암사 백매, 청매 보려면 25일쯤이 좋겠다.
{양지나 시가에는 백매도 만발했으니 늦은 행차로 뒷북치고 나서 내 원망 마시게.}
법정스님께서 원적(圓寂)하시던 시각에 마침 송광사에 있었네.
별로 준비하는 것 같지 않더라.
전해졌는지 모르지만 비보는 아니니까, 경보를 울릴 일도 아니니까.
풍경도 없는 절이니 큰절이라도 별 소리 나지 않고 적요(寂寥)하데.
효봉영각(曉峰影閣) 댓돌에만 간밤 내린 눈이 녹지 않았나 했더니
무말랭이를 말리노라 돌아가며 펼쳐놨더라고.
그런데 해우소는 하도 지저분해서 근심 떨어낼 수 없겠던데.
{사람들 맞으려면 치워야겠더라.}
불일암에 들리고 싶었으나 일정에 쫓겨 놓쳤는데...
당분간 성지처럼 되어 호젓함 누리려 찾지는 못하게 됐겠다.
1975년 불임암 짓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함석헌 할아버지와 함께.
일일일식 하신다던 그 어른은 불쑥 찾아와 우리들 밥을 축내고 그러셨다.
전날 고향 해남에서 올라온 동백과 매화꽃잎을 만지작거리셨다고...
톡 톡톡 동백꽃 떨어지는 소리, 최루탄도 아닌데 알싸한 냄새로 퍼져 눈물 나게 하는 매향
부음을 보태어 더 좋았다고 할 수야 있겠는가
그래도 발자취의 일부나마 때맞춰 찾은 셈이네.
김수환 추기경 떠나시며 ‘사랑’-뭐지?-과 나눔, 구체적으로는 ‘장기기증’ 등의 바람 일으키셨는데
법정 스님 남기신 ‘소유욕’을 경계하는 말씀들이 반짝경기 후 스러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울음은 잠깐이나 울림은 오래가기를.
음악은 1938년 Pablo Casals의 연주입니다.
{모노 음질이 좀 그렇지만 저작권 시비에서 안전할는지...}
법정 스님이 즐겨 들으셨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