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추리 - 옛집에 핀 꽃

  

이맘때는 집 앞, 길옆, 숲, 어디서라도 원추리를 볼 수 있다.

끝없이 개량 신품종이 나오고 있지만

미국 동북부와 캐나다 남부에서 볼 수 있는 야생종 대부분은 사실 한국에서 들어가 퍼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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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미스킴 라일락이나 섬초롱꽃조차 밖에서 돈 들여 수입해야 한다는데...

품종 등록을 게을리 하다 보니 까딱수에 원산지조차 흔들리게 되었다.

삼십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회양목-도장나무-을 Korean Boxwood라고 했는데

언젠가부터 대부분의 nursery 목록에는 Japanese Boxwood라고 표기한다.

 

백일홍-배롱나무꽃-이 딱 하루만 피고 떨어지듯

원추리도 아침에 피었다가 해질 때면 시든다.

워낙 연이어 피어나니 오래 가는 줄 알지만.

{학명 hemerocallis는 희랍어로 ‘하루’, ‘날’을 가리키는 hemera와 ‘아름다운’이라는 뜻의 kalos가

합해져 된 말이다.}

 

어찌 daylily 뿐이랴, 꽃이란 다 그렇지 않은가

이슬 머금고 반짝 웃고는 이내 시들고 마르더라.

다 그래, 새삼스레 “Ah! non credea mirarti / Sì presto estinto, o fior”할 것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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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에 며칠 머무는 동안 예전에 살던 집들을 돌아보았다.

 

1987년부터 2년간 살던 집, 변변한 침실 하나 없지만 무늬는 이층집

꽃 가꾸는 재미가 괜찮던, 긴 뒤뜰이 있는 집이었다.

Trellis에 올린 clematis(큰꽃으아리)가 동네의 자랑이었지.

지금도 한인이 사는 듯한데, 아마도 단기연수자들에게 세놓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그리도 손보지 않았는지, 지붕 싱글은 벗겨지고 깨진 유리창은 비닐로 막았다.

그래도 옆이 공원과 인접해 있어 시에서 심어놓은 꽃들이 경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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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1989년부터 4년 동안 산 집이 있다.

큰 체리나무-사쿠람보-를 비롯하여 유실수가 여러 주 있었고 포도넝쿨이 벽을 둘렀었다.

예전에 푸성귀 좀 뜯어먹겠다고 일궜던 땅은 잔디밭으로 복원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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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웬 ‘For Sale’ 말뚝?

Yonge-Sheppard 근처 Willowdale이 지금은 고급아파트들이 들어서고

한인들이 많이 이주한 고급 주택가가 되었다.

근근이 월세를 물며 집을 가진다는 꿈도 못 꿀 처지였으니 이제 와서 말해봤자지만

가격이 네 배 정도 오르고 보니-화폐가치의 하락도 고려해야겠지만-

아, 이제는 저런 집에서 꽃 가꾸며 살아보지 못하겠구나!라는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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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있는 한인들은 과시용인지 투자용인지 큰집을 소유하는데

안팎으로 잘 가꾸며 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월드컵 16강에 진입했다고 태극기를 내건 이층집은 driveway 뿐만 아니라 앞뜰을 모두 벽돌로 깔았는데

옆집은 가라앉은 납작한 나무집이지만 온갖 꽃을 심어놓아 지나가는 이들에게 기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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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가던 중 마침 아버지날이 끼어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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