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안 놀아
-길도 젖고 그런데 산에 가도 되겠는가?
-장마 때가 좋아, 큰 비 오고나면 산이 달라져. 숲 냄새도 기막히게 좋고.
다행히 산길에 들어서자마자 비는 멈췄고 젖은 머리 털 때 후드득 흩어지는 물방울 정도 간간이 맞았다.
{Nat King Cole의 “Into each life some rain must fall”을 떠올리며...}
둘 다 잘들 올라간다. 적어도 한 주일에 한번은 산에 다닌다니까.
내가 제대로 등산화라도 챙겨 신고 산에 오른 게 얼마만인가?
숨이 차서 따라가기가 힘들어 자꾸 처지고 그랬다.
그러고 보니 “그럴 거면 너랑 안 놀아”라는 식으로 따라오는 이들을 귀찮아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따라나서려는 아내에게 몇 번이고 겁주며 주저앉히려고 했다.
“멀미할 거잖아? 숨차다고 그럴 텐데... 여럿이 가는데 혼자 처지면... 준비운동이나 더 하셔.”
저 친구들이 “많이 망가졌구나. 같이 다니기 좀 그러네...” 그러면 어쩌겠냐고?
잘 간다고 혼자 치달을 게 아니었네!
{돌봄을 받아야 할 편으로 가는 사람의 때늦은 후회?}
친선경기에 사람들 불러들이느라 만든 ‘Most Honest 상’ 같은 건 관두고
잘난 사람이 눈에 띄지 않게 잘남을 감추고 못난 사람이 안쓰럽지 않을 정도로 힘쓰는 경기에서
“너랑 안 놀아”라는 소리 아무도 하지 않고
누구라도 몰두하며 즐기는 시간-
그렇게들 어울리면 좋겠다.
네 시간 산행 중 벌벌 떨며 네 발로 긴 구간도 있었고
탁족의 여유로운 때도 있었다.
좋은 친구들 덕에 잘 놀고 저녁은 호암회관에서 거하게...
다음엔 ‘高士濯足圖’ 말고 ‘問月圖’를 그리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