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바리?
“여기는 내 나와바리니까 안내도 내가 하고 저녁도 내가 책임지는 거야.”
“그런데 ‘나와바리’가 정확하게 뭔가? 김두한이니 시라소니니 연결시키지 않고 써도 되는 거야?”
“그게, 좀 그러네. 繩張り라고 표기할 수 있을까... 공사장이나 사고발생현장에 새끼줄 쳐놓고
‘들어오지 마시오.’라고 하는 뜻으로...”
시편 16편 6절이 참 고운 구절이다.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The boundary lines have fallen for me in pleasant places; surely I have a delightful inheritance.)
내가 물려받은 유산이랄까, 삶의 분깃이랄까 그런 것에 만족하니 그저 좋기만 할 뿐,
“내 잔이 넘치나이다(My cup overflows)”라는 감사의 표현이다.
아직도 깔끔하게 청산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우리 세대가 자랄 때는
일어-‘왜말’이라 했지-와 일식 표현들이 일상생활에서 여과 없이 혼용되고 있었다.
어쩌다가 어린 시절 쓰던 말이 튀어나와 “아차~”하게 되는데
순화(醇化)된 우리말이 생소하고 어려워 바꿔 쓰기가 내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나와바리’라는 말을 꼭 써야 하는 것도 아닌데...
조폭이 아니라면 ‘세력권’ ‘관할권’ ‘영업구역’ ‘활동무대’라는 말을 써야 할 상황에 이르지도 않을 테고.
{‘나와바리’는 됐고...}
속속들이 아는 데라며 잘 안내하겠다고 그러더니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지 않았다.
웬 이동주보? 산에서 그러면 안 되지, 떡심 풀려 험한 길을 어찌 내려가라고?
“여기가 오봉이다, 다음에 사봉, 삼봉, 그렇게 따라 내려가면 된다.”
“대동여지도 만들 것도 아닌데 다 들릴 게 있는가, 빠른 길로 가자. 이러다 저물겠다.”
그렇게 또 한 번 다녀왔는데
“그대 활동구역 두 번 갔으니, 다음엔 우리 동네로 오라. 노고산이라고 좋은 데가 있거든.”
“응, 노고단?”
“아니고, 신촌에...”
“내 학설은 말이지”로 나오다가 내 입꼬리가 삐뚜름해진 것을 보고는 “내 가설인데...”로 고친다.
그래야지, 학자가 검증되지 않은 제 주장을 두고 ‘학설’이라 할 수는 없지.
그런데, 파뿌리가 검은 머리가 되는 경우는 뭔가?
대기업 이사까지 지낸 분이 십년 동안 동창회 총무로 심부름하며 몸에 밴 봉사정신으로
늘 뭘 챙겨온다, 물이든 떡이든.
난 등판에 ‘초보’라고 붙이고 그냥 따라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