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은 참 더웠지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잘못된 기억일 것이다.
{뭐 내가 증인으로 나서기는 좀 그렇다.}
나보다 열한 살 더 드셨는데 전쟁 준비하는 인민군대에 편입될 뻔 했겠는데 용케 빠졌고
월남해서는 미군들의 보호를 받았기에 국군에 징집되지도 않았다.
그분은 나를 전쟁의 세부사항을 저장한 CD쯤으로 인정해주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대화의 상대로 삼았다.
나야 그분이 목을 축이실 때에 추임새-쫑코-나 넣어주면 되었다.
{그러다가 켈로부대, 구월산유격대 대원들도 끼어들고 해서 나는 졸지에 참전용사회 회원이 되고 말았다.}
그는 장진호 근처에서 허기로 쓰러졌다가 미 해병대원들에게 발견되어 살아남았단다.
몹시 추웠다고.
미군 피해는 중공군에게 당했다기보다는 영하 40도의 혹한을 준비해지 못해서라는.
나는 일사후퇴 때 몇 개 충격적인 장면이 뇌리에 박히긴 했지만 추웠다는 기억은 없다.
어른들은 입을 모아 추웠다고 그러신다.
이런 더위 있었던가?
태풍 피해로 치면 사라호처럼, 그렇게 기억될 만한 어느 여름의 찜통더위를 끄집어낼 수 있을까?
실은 32년을 해외에 있었으니 ‘기록’을 언급하기에는 부적격자라 하겠다.
불볕이 내려쬐는 텍사스에서 12년을 살았으니 고온에는 저항력이 있는 셈이다.
에어컨이 고장 난 어느 날 실내온도는 화씨 110도에 이르기도 했다.
{심심하시면... (F-32) x 5/9 = C}
그런 여름 수없이 지났겠는데도 노약해서 그런가
흑인 빈민가에서는 냉장고 문을 열어놓은 채 그 앞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된 노인들이 해마다 여럿이었다.
역전의 용사랄 건 없지만...
한국 돌아와서 이렇게 더위로 맥 못 출 줄이야.
에어컨까지는 아니라도 선풍기는 있지 않는가.
바람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도, 그나마 한 가닥 흘러들 때는 먼지를 더 많이 불러들이지만
그래도 발광하지 않도록 뒹굴 만한 ‘공간’은 넉넉하지 않는가.
쪽방촌 단칸방에 사는 이들 이 여름을 어찌 날까?
게으른, 하염없는, 공연한 기도 한 줄 늘어져 나온다.
무슨 시원한 소식이라도 없을까?
사회적 합의? 그런 식의 변명 때문에 더 열 날 이유가 없는 세상이다.
삶도, 사랑도, 세상도 잘못돼가고 있을 때는 이미 잘못된 것.
그렇다고 안 살 수 있겠어? 바꿀 수 있겠어?
잘못되어도 사랑인 것을.
{엇나가는 대화, 집착, 의심, ‘자유’라는 이름의 막가파 언행, 그런 걸 다 포함하고도 사랑은 사랑.}
공중도덕과 사회정의의 부재, 그런 것에도 이제 화나지 않는다.
{터무니없는 무질서, 그 아노미가 동력이고 살맛인가 봐?}
아무래도 이 여름은 가장 더웠던 때로 기억날 것이다.
그래도 다들 살아남을 것이다.
이스마엘 혼자 남았다면 믿거나 말거나의 소설이 되겠지만
겪은 이들이 워낙 여럿이니 시시한 얘깃거리로 보따리에 묻히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