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대봉 꽃길 1

 

도시에서 길을 잃을 수 있어?

빠른 길 찾는데 실패했다는 거지 길 위에 있는 거잖아.

길 밖으로 다닐 수야 없지.

산에서라면 얘기가 다르다고.

길에서 시작했는데 길 밖으로 나오고 길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거든.

 

태백에서 길을 잃었다.

차 타고 큰 길 가다가?

 

상황 설명을 해볼게.

나야 뭐 내 맡은 꼭지 끝내면 다른 세션에는 굳이 참석 의무 없는 외래강사 신분이니까

연수회 중간에 슬쩍 빠져나왔는데

담당자의 배려로 법인 차를 끌고 나올 수 있었지.

국제면허로 한국에서 최초 운전, 내비 입력할 줄 모름, 천연가스 차-오름길에서 힘 못 쓰데.

소나기 오락가락, 가랑비 끊임없음, 그러다가 잠깐 개임, 그러니 1000m 넘는 고지는 안개로 뒤덮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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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여기가 어디? 선수촌을 지나 정암사로 들어가는 샛길인가 본데

한발 가면 한발 앞이 보이는 무중(霧中)을 더듬듯 가다가 깜짝쇼로 볕들듯 해서 돌아보니

눈 내리깔아도 산봉우리들이 보이는 능선 외길 위에 있는 거라.

밑이 빠진 듯 배가 서늘해지며 머리에 뜬 검색창에 ‘파촉 잔도’가 입력되자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 삼만리!

에고, 아찔, 높고 험해라. 촉 가는 길 어려움이 하늘 오르기만큼 힘드네!

(噫吁戱 危乎高哉 蜀道之難 難于上靑天)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길 되나니 은혜로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며 가다보니 철조망과 잠긴 문이 드러난다.

군사작전 구역 무단침입 금지!

어찌어찌 차를 돌려 살아 내려왔다.

“불여귀(不如歸)”라는 말 한 번도 새어나온 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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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까먹고 두 시간 남았는데 어딜 간다? 금대봉 들꽃 보러 가면 되겠네.

 

1,418m!

두문동재까지 차로 올라간다. 주차장이 1,200m.

그러니 정상까지 30분 걸림. 에이? {맞아요, 저 그 시간에 칸첸중가 올랐다니까요.}

대덕산까지 가서 검룡소로 내려오면 넉넉잡고 4시간이면 될 텐데

눈에 띄지 않게 차를 돌려줘야 하니까... 쩝

고목나무샘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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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이 있다면 꽃 이름들을 줄줄 불러주며 갔을 것이다.

{그가 뭘 모르는 사람이라야 좋겠지, 틀리는 게 반이 넘어도 지적할 리 없거든.

“어쩜 그리 척척박사세요?”라는 아부에 우쭐대기.}

 

현호색, 꿩의바람꽃, 피나물, 벌깨덩굴 같은 게 피어나는 봄 같지는 않아서

또 고랭지이기는 하나 이번 여름 무더위에는 어쩔 수 없었는지 여름꽃들조차 힘들어하는가

‘들꽃천지’는 아니었다.

{밥집이나 카페 이름을 ‘들꽃세상’이니 그러지들 말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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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왜 전성시대 지난 영자 말이지

확 눈에 띄거나 다시 돌아보고 싶을 정도로 예쁘진 않은데다가

걸핏하면 울고 그만큼 자지러지기도 잘 하는

가끔 무한감동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딱 그만큼이었다.

 

칡범 무늬의 물푸레나무 같은 건 금방 알아보지.

그렇게 멀리서도 척 보면 알만한 것들이 있지.

풀도 아니고 나무도 아닌, 키 작은 것들을 보고 “얘는 산작약, 쟤는 산수국이구나.”라고 아는 척했다.

잠자리가 앉기를 주저하며 날개 떨듯 바람도 없는데 잎들이 흔들렸다.

잔잔한 감동의 표현일 것이다.

“어떻게 날 알지? 꽃을 달지도 않았는데 알아보다니...”

 

{산에서 자라니까, 정원에서 기르는 게 아니니까 ‘산-’이라고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

덜 화려해서 덜 쳐주는 뜻으로도 그럴 것이다.

촌에 사니까 ‘촌사람’이겠으나 어수룩하다는 흉까지 살짝 곁들이듯.

들장미, 개살구, 돌배가 원조일 텐데 억지로 바꾼 것들 앞에는 그런 접두어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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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런히 줄 세우고 구획 정리된 걸 질서라고 한다면

늦여름 들판은 무질서일 것이다.

하늘 찌르듯 올라가는 것, 감는 것, 기는 것, 파고 들어가는 것들이 엉겨있다.

생겨먹은 대로, 그러니까 지어진 대로 자라는 것들을 두고 뭐라 탓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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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미’는 그저 뒤죽박죽이라는 뜻이 아니고

신의 뜻에 어긋나거나 법과 원칙을 무시하는 현상(G. ‘anomia’)을 가리켰고

목적 달성을 위하여 수단의 정당성을 문제 삼지 않는다든가 해서

사회적으로는 가치관이 붕괴되고 개인에게는 이상의 실현 의욕이 사라지는 불안정상태를 이른다.

대통령께서 ‘공정사회 구현’을 말씀하셨고 “청와대가 그 출발점과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그러셨다.

그러자면 이번에는 밀어 붙이고 다음부터는 ‘죄송청문회’가 사라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