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혼자 나갔다 들어오면서 좀 미안했는지 “이거 과일인데...”하며 봉지를 내밀었다.
“아니 이게 뭐야, 대추?” {급 실망. 사과도 아니고...}
재래시장을 지나다가 친구가 대추 한 되씩 사서 돌렸다. “이거 비싼 거다.” 하며.
비싸겠지. 추석이 코앞인데 제수용으로도 그렇고...
그런데, 비싼 건 그렇다 치고 맛이 있어야 말이지, 단맛이 전혀 안 들었네!
친구에게 뭘 해주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과일이 엔간히 비싸야 말이지, 미국 살 때 생각하니 돈 주고 사 먹지는 못하겠더라고.}
토론토 과일값이 그러니 LA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쌀 것이다.
“제가 잘나봤자 얼마나...” 우린 한 번도 그런 생각해본 적 없다.
꿀릴 것 없고 그만하면 잘 산 거니까...
{우여곡절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고, I did it my way로 살아왔다는.}
또 만나면 좋은데... 뭐 비교할 게 있다고?
그러니 토라질 이유 없는 거지.
밉지 않은 과장,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기분 좋은 excessiveness
그런 게 친구 만나는 재미일 것이다.
“처자식들이 날 두고 바리새인이라 한단다.” 그런 얘기 듣고도 우린
낄낄거리지도 않고 비감해하지도 않는다.
아버지에게서 얻지 못한 포근함을 자식들에게 전하지도 못하고
남을 해칠 도검이 없는 대신에 근엄함을 갑주로 여기며 살아온 세대인데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불행을 굳이 떨쳐낼 것도 아니잖아.
누구나 다 아는 말, “Long absent, soon forgotten”이라니까
애인, 친구 아니라 그저 지인이라 해도 ‘관계’는 ‘관리’가 필요한 건데
그게 더 가까운 사이라면 더 잘 이해해줄 것 같아 오히려 방치하다 보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즉시 “그때에 내말이 ‘잊었노라’”로 치닫게 되더라고.
참으로 맹랑하게도 “이제는 잊혀버린 옛꿈이외다”로 떨어지더라고.
여럿이 연루되면 ‘막토회’-마지막 토요일에 만나서 막 토해내는-니 ‘이화회’니 식의 모임을 결성하겠지만
솥발이쯤 되면 정례회동? 흥, 딱히 정기적일 이유도 없고 배고플 때 밥 찾아먹듯
사발통문 돌릴 것도 없이 자연스레 만나게 될 것이다.
여우는 사냥꾼들이 마을처녀들과 어울려 춤추는 목요일 저녁이라면 상대적으로 나들이가 쉬울 것이고.
나야 대목이라고 대박 날 것도 아니고 별 볼 일 없이 심심하겠지만
성묘 등 도리를 다하는 사람들에게야 이래저래 바쁠 테니 한동안 못 보겠구나.
하여 封手(봉수) 찍듯 만났다가 헤어지기 전에 서촌 골목을 이리저리 쑤신다.
雄姿(웅자)를 드러낸 광화문을 두고 괜히 주고받는 잽.
“저거 正熙體지?”
“어데, 集字體 아니가?”
“두이 다 바이보이다. 저거 디지털체이고, 임태영이 쓴 걸 본떴다 카더라.”
“갸가 누구라?”
“고종 때 훈련도감인가 했다는데, 그거 알았다고 장학퀴즈 상금 타먹을 것도 아니고...”
교보문고에서 책 사서 나눠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