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이야기 1 -시 낭송회 잠입 르포-

 

아하, 이거 참, 어쩌지요?

일찍 일어서는 사람에게 큰 선물을 두 개나 안기셨습니다.

{경품으로 치자면 ‘특상’과 ‘일등상’쯤 되는 것들 아닌가 싶네.}

玉書랄까 시인 친필과 함께 다른 분이 지으신 ‘L'Africana’ 주제에 의한 부엌용 작품을 받았는데

부부가 같이 왔다는 명목이 있기는 해도

공정사회 구현에 역행하는 편향적 조치에 수혜자는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도리 있나, 그냥 김탁구처럼 씩씩하게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좋은 밤입니다” 외칠 뿐

모다깃매질 놓지 마셔요.

아마도 준비위원들이 모여 ‘Guess who's coming to dinner’ 쑥덕공론 중에 합의된 사항?}

 

 

10091701.JPG

 

 

 

시시한 이야기라니? 뭐가 시시하다는 건데? -시빗조로-

한국어 서투른 제 아이는 trivial, dull, no fun, not significant의 뜻으로 “It was so 시시.” 그러거든요.

아무렴 제가 하찮았다는 뜻으로 그런 말 골랐겠습니까? {받은 것도 있고 한데.}

 

사인 받겠다고 내민 속표지에 몇 자 떨어뜨리셨는데, 아 글쎄...

 

 10091702.JPG

 

아니, 내가 왜 시와 함께 평생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병들었을 때나 건강할 때나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느니라. 쾅. 쾅. 쾅!”

그런 선고를 받은 것 같아 왕부담, 아 글쎄 내가 왜?

 

 

그건 “나는 그렇게 살았어요”라는 시인의 고백이겠지요.

“당신도 시인이라면 그렇게 살겠지요”라는 격려이겠지요.

{대화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아니거든요”라고 그러지는 못했습니다만.}

 

시인은 그럼 어떻게 살겠습니까?

시를 모시고(侍) 살겠네.

시를 베풀며(施) 살겠네.

시에 의지해(恃) 살겠네.

시와 결혼한(媤) 셈이네.

나중에라도 거한 호칭 하나(諡) 얻겠네.

시인은 시시한 삶을 사는 사람이지요.

 

그렇게 산 사람의 얘기는 시시한 얘기겠네요.

 

Beautiful은 ‘full of beauty’, wonderful은 ‘full of wonder’이듯

시로 가득차면 ‘full of 시’, 해서 ‘시시하다’ 그럴 수 있을까?

 

정지용이 왜 ‘美하다’는 말을 쓴 적이 있잖아요?

비극의 흰 얼굴을 본 적이 있느냐?/ 그 손님의 얼굴은 실로 美하니라.” (‘비극’)

그렇게, ‘詩하다’는 말도 쓸 수 있겠는지?

‘잠하다’ 그러지 않고 ‘잠잠(潛潛)하다’고 하듯이

‘시하다’가 좀 그렇다면 ‘詩詩하다’는 어떻겠어요?

아주 시적이라는 뜻으로.

 

아, 그 ‘詩的’이라는 말도 그러네.

‘-的’은 ‘-스런’이란 뜻, 왜 “넘현스런”이라는 수명 짧은 말이 돌아다닌 적도 있었지요?

시스런? 차라리 ‘시시한’이 어떻겠냐고?

 

시인은 어떻게 살겠습니까? 시적으로?

 

  정신이 밥 먹여주는 세상을 꿈꾸면서

  아직도 빛나는 건 별과 시뿐이라고 생각하면서

  (... ...)

  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천양희, ‘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시인은 시시하게 세상에 산다.

 

 

 

10091703.jpg

 

 

아 이제야 ‘천양희’ 시인의 이름이 나왔네요.

엊저녁에 카페 ‘사카’ -강남구청 역 4번 출구 근처-에서 있었던 천 시인의 시 낭송회에 다녀온 얘깁니다.

 

 

근데 말이죠, 시인께서 요즘 쓰는 말로 포스 작렬, 번득이는 카리스마 때문인가

사람을 좀 오그라들게 만드시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시인은 상흔이 깊더라도 그 골짜기는 품어주는 기운으로 서려야 하지 않을까?

괜히 쫄았나 싶어 뒤늦게 불평하는 것 같지만, 실은 바위얼굴 보듯 했다고요.

 

그 森嚴(삼엄)한 기백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체험-자기만이 겪고 누린 경험-은 삶을 이루고

저마다 삶의 요소의 배합이 다르니까 다 다른 세상을 사는 거지요.

나 같지 않은 네 인생, 너 같지 않은 내 인생, 만나서 같이 한 인생, 떨어져서 따로 한 인생

너와 내가 아닌 다른 숱한 조합들.

 

남들과 다른 내 삶, 관심 있는 사람이 추측해도 모를 내 삶을 두고 뭐라 할 건 아닌데

그냥 “가시가 많구나” 하더라고요.

 

  저 나무는 왜 가시가 있는 거야?

  (... ...)

  가시는 언제나 속으로 파고든다

  가시가 아프다고 뽑지 마라

  가시가 없으면 가슴이 없는 것이야

 

   -‘가시나무’-

 

속으로 파고드는 가시는 안을 지탱하는 골격이기는 하겠는데

가시를 밖으로 드러냈다고 제 한 몸 지키지는 못하더라고요.

 

 

10091704.JPG

                                         옥산서원 앞에 있는 엄나무

     삼계탕이나 약재로 쓰겠다고 베어가지 않아 그냥 자랐네.

 

 

“눈물로 쓴 편지는♪”도 과하다 싶은데

피로 쓴 시? 그거 너무 한 거 아녀요?

씌어진 모든 것들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산문집, ‘직소포에 들다’)!

어휴, 그건 정말...

 

그분은 말하자면 ‘서정시인’인데

그러면 서정시는 모두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의

마사지라야 할까요?

 

찌르는 서정시도 있어요.

아프기에 감동인.

 

 

1009170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