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이야기 1 -시 낭송회 잠입 르포-
아하, 이거 참, 어쩌지요?
일찍 일어서는 사람에게 큰 선물을 두 개나 안기셨습니다.
{경품으로 치자면 ‘특상’과 ‘일등상’쯤 되는 것들 아닌가 싶네.}
玉書랄까 시인 친필과 함께 다른 분이 지으신 ‘L'Africana’ 주제에 의한 부엌용 작품을 받았는데
부부가 같이 왔다는 명목이 있기는 해도
공정사회 구현에 역행하는 편향적 조치에 수혜자는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도리 있나, 그냥 김탁구처럼 씩씩하게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좋은 밤입니다” 외칠 뿐
모다깃매질 놓지 마셔요.
아마도 준비위원들이 모여 ‘Guess who's coming to dinner’ 쑥덕공론 중에 합의된 사항?}
시시한 이야기라니? 뭐가 시시하다는 건데? -시빗조로-
한국어 서투른 제 아이는 trivial, dull, no fun, not significant의 뜻으로 “It was so 시시.” 그러거든요.
아무렴 제가 하찮았다는 뜻으로 그런 말 골랐겠습니까? {받은 것도 있고 한데.}
사인 받겠다고 내민 속표지에 몇 자 떨어뜨리셨는데, 아 글쎄...
아니, 내가 왜 시와 함께 평생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병들었을 때나 건강할 때나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느니라. 쾅. 쾅. 쾅!”
그런 선고를 받은 것 같아 왕부담, 아 글쎄 내가 왜?
그건 “나는 그렇게 살았어요”라는 시인의 고백이겠지요.
“당신도 시인이라면 그렇게 살겠지요”라는 격려이겠지요.
{대화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아니거든요”라고 그러지는 못했습니다만.}
시인은 그럼 어떻게 살겠습니까?
시를 모시고(侍) 살겠네.
시를 베풀며(施) 살겠네.
시에 의지해(恃) 살겠네.
시와 결혼한(媤) 셈이네.
나중에라도 거한 호칭 하나(諡) 얻겠네.
시인은 시시한 삶을 사는 사람이지요.
그렇게 산 사람의 얘기는 시시한 얘기겠네요.
Beautiful은 ‘full of beauty’, wonderful은 ‘full of wonder’이듯
시로 가득차면 ‘full of 시’, 해서 ‘시시하다’ 그럴 수 있을까?
정지용이 왜 ‘美하다’는 말을 쓴 적이 있잖아요?
“비극의 흰 얼굴을 본 적이 있느냐?/ 그 손님의 얼굴은 실로 美하니라.” (‘비극’)
그렇게, ‘詩하다’는 말도 쓸 수 있겠는지?
‘잠하다’ 그러지 않고 ‘잠잠(潛潛)하다’고 하듯이
‘시하다’가 좀 그렇다면 ‘詩詩하다’는 어떻겠어요?
아주 시적이라는 뜻으로.
아, 그 ‘詩的’이라는 말도 그러네.
‘-的’은 ‘-스런’이란 뜻, 왜 “넘현스런”이라는 수명 짧은 말이 돌아다닌 적도 있었지요?
시스런? 차라리 ‘시시한’이 어떻겠냐고?
시인은 어떻게 살겠습니까? 시적으로?
정신이 밥 먹여주는 세상을 꿈꾸면서
아직도 빛나는 건 별과 시뿐이라고 생각하면서
(... ...)
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천양희, ‘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시인은 시시하게 세상에 산다.
아 이제야 ‘천양희’ 시인의 이름이 나왔네요.
엊저녁에 카페 ‘사카’ -강남구청 역 4번 출구 근처-에서 있었던 천 시인의 시 낭송회에 다녀온 얘깁니다.
근데 말이죠, 시인께서 요즘 쓰는 말로 포스 작렬, 번득이는 카리스마 때문인가
사람을 좀 오그라들게 만드시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시인은 상흔이 깊더라도 그 골짜기는 품어주는 기운으로 서려야 하지 않을까?
괜히 쫄았나 싶어 뒤늦게 불평하는 것 같지만, 실은 바위얼굴 보듯 했다고요.
그 森嚴(삼엄)한 기백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체험-자기만이 겪고 누린 경험-은 삶을 이루고
저마다 삶의 요소의 배합이 다르니까 다 다른 세상을 사는 거지요.
나 같지 않은 네 인생, 너 같지 않은 내 인생, 만나서 같이 한 인생, 떨어져서 따로 한 인생
너와 내가 아닌 다른 숱한 조합들.
남들과 다른 내 삶, 관심 있는 사람이 추측해도 모를 내 삶을 두고 뭐라 할 건 아닌데
그냥 “가시가 많구나” 하더라고요.
저 나무는 왜 가시가 있는 거야?
(... ...)
가시는 언제나 속으로 파고든다
가시가 아프다고 뽑지 마라
가시가 없으면 가슴이 없는 것이야
-‘가시나무’-
속으로 파고드는 가시는 안을 지탱하는 골격이기는 하겠는데
가시를 밖으로 드러냈다고 제 한 몸 지키지는 못하더라고요.
옥산서원 앞에 있는 엄나무
삼계탕이나 약재로 쓰겠다고 베어가지 않아 그냥 자랐네.
“눈물로 쓴 편지는♪”도 과하다 싶은데
피로 쓴 시? 그거 너무 한 거 아녀요?
“씌어진 모든 것들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산문집, ‘직소포에 들다’)!
어휴, 그건 정말...
그분은 말하자면 ‘서정시인’인데
그러면 서정시는 모두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의
마사지라야 할까요?
찌르는 서정시도 있어요.
아프기에 감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