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陶工)의 변(辨)
-뭐 좀 들어온 게 있니?
-아니, 아 참 배 한 상자 들어왔어요.
-우린 아무 것도 없어. 배 한 개만 들고 와라. 과일이 너무 비싸서 못 먹어봤다.
그렇게 나갔던 아내는 이모님께서 사주셨다며 포도 한 상자와 또 뭔가를 들고 돌아왔다.
계약직으로 재택근무 하는 주제에 ‘내 직장’이라고 내세울 것도 아니지만
직장에서는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인가 하는 모양인지
상조회에 가입되지 않은 임시직에게도 명절에 내리던 참치깡통이나 비누세트 같은 게 금년에는 없었다.
면려 상여금 같은 건 계약서에 들어있는 항목이 아니니까 정말 안 준다고 섭섭할 이유 없다.
우수니 보너스니 그런 것은 생기게 되면 “아니, 제가 이런 걸 받아서...” 그러며 빼다가
못이기는 척하고 받으면서 감사하면 되고
그런 것은 처음부터 가외수입으로 예산에 잡힌 게 아니니까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것이다.
학자도 아닌 사람을 더러 학교에서 부르기도 하는데
저서 및 연구논문, 수상 경력을 제출하라고 하면 ‘대략 난감’이다.
“저 그런 것 없습니다.”
{죄송, 시무룩, 씁. 아니라면 마는 거지, 내가 자청한 적 없으니까 고개 들자.}
과학은 누적적 지식이다.
실험결과는 보편적으로 채택할 수 있으니까 반복할 필요가 없고 확인된 것 위에다가 다른 것을 쌓을 수 있으며
그렇기에 과학은 빠른 속도로 발달할 수 있다.
인문학은 비누적적 지식이다.
잘난 줄 아는 사람이 확신하는 바를 내놓아도 더 잘난 사람이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로 뭉개버리면 그만이다.
예술? 어째 한숨부터 나오네.
저는 “제품이 아니라 희귀 명품입니다” 그래도, 알아주는 이 없는 데야 살아남겠는가.
됐다. 저 좋으면 그만 아닌가.
그런 것이 즐길 만한 습관이었다면 계속할 것이고
지쳤거나 하기 싫으면 그만두면 그뿐이고
쉬었다가 심심하면 무딘 솜씨로라도 다시 하면 된다.
깨진 백철솥으로 엿 바꿔 먹듯 맘에 들지 않은 작품 내주고 쌀 팔면 되고
대견스러운 물건 하나 빠졌다고 남겨둘 것 아니고
큰놈 낚아 올린 다음에 씩 웃고 나서 놓아주듯
깨버리자.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작품은 다음 가마에서 나오는 것.
그래도 살강에 보시기 몇 개는 얹혀 있어야 사람 사는 집 정지 아니겠는가.
내가 쓸 거니까 하치 막사발 두엇 남겨둔다.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줬다면 보수를 받을 만하다.
연예인의 고액소득이나 운동선수가 받는 메달, 포상금 같은 것들 다 인정한다.
그냥 저 좋아서 한 것, 제가 즐긴 것에 대해서 무슨 상을 기대하는가?
그렇게 살면서 밥 굶지 않았으면,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신춘문예에 응모하고 “행여나”로 목 빼는 것은 이해하지만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 발표를 기다리며 손톱 뜯는 노 시인은 좀 그렇지 않은가?
롱펠로우의 ‘인생예찬’인가 “우리가 떠나간 시간의 모래 위에 발자취를 남길 수 있나니”라는 구절
읽으며 가슴이 뛰던 시절도 있었다.
모래 위에는 남기지 못하네.
할리우드 스타들처럼 시멘트 굳기 전에 손바닥 찍거나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 세울 수는 있어도.
그런데 왜 남겨야 하는가? 기암절벽에 제 이름 새기는 깡패들.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다면 참으로 군자로세}라는 구절을
가르침의 처음에 두신 孔 선생님 생각하다 피식 웃었다.
“江流石不轉”(강물 흘러가도 돌은 구르지 않네)라 했던 杜甫는 뭐가 부러웠던 걸까?
됐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