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만나러 갔다가 -서산, 태안 나들이-
택한 가난은 아름답다.
꿀릴 것도 자랑할 것도 아니고
견딜 만하면 누릴 수도 있는 거니까
무거운 짐은 아니고 산에 갈 때 지는 배낭 같은 것이다.
수도자가 부자일 수는 없지.
관리하는-누가 소유하랴?- 재산을 재량껏, 양심껏 치우치지 않고 나눠주는 일을 맡은 사람이라면
착한 執事이기는 해도 修德과 祈禱에 專務하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교회, 사찰, 종단도 그렇다.
사람 모으고 재산 증식하는데 성공했다면 유력한 기업이기는 해도
순수한 종교기관은 아니다.
대형 교회나 사찰의 세습과 횡령 비리, 운영권을 둘러싼 난투 같은 것들은
다반사이니 새삼스레 혀를 찰 일도 아니네. 그런 거지 뭐?
* 이하 개심사 사진은 지난 4월에 찍은 것들
이렇게 말하고 나서 ‘開心寺’를 언급하면 마치 지탄받아야 할 것들의 사례를 드는 것 같지만
그건 아니다.
마음을 준 사람의 흐트러진 모습을 한번 보았다고 해서 한번 준 걸 되찾겠는가.
끌리는 힘은 좀 줄어들 것도 사실.
개심사가 늘 가난한 모습을 보여주고 방문자들에게 불편을 끼쳐야할 건 아닌데...
대대적인 중창불사랄 것도 아닌데...
성형미인에다가 소비자편의를 고려하며 내방자를 끌어들일 게 아니고
청정도량의 분위기와 ‘그대 거기 있음’을 아는 이들이 기억하는 모습을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주문 지나 길지도 험하지도 않은 길조차 피하려는 이들의 승용차 출입도 막고.
이 전통 측간-해우소- 살아남아야 할 텐데
{‘개발과 보존’이라는 해묵은 논점처럼 싱거운 얘기가 되고 말았네?}
4대강 사업 낙동강 32공구 구간인 의성군 단일면 생손리에서 마애보살좌상이 발견되었다.
여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니 천년을 버틴 셈인데 폭약을 넣으려고 구멍까지 뚫었던 것일까?
어쩌다가 “그래도 신고는 해야겠지?”로 마음이 바뀌어 공사가 얼마간 지연되게 생겼네.
{짜아식, 눈치도 없이... 그냥...}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마애삼존불-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소재-
6세기 말 만들어졌다면 1,400년을 그 자리에 비바람 맞으며 있었다. 화강암인데.
어쩌면 그럴까?
어쩌면 그러실까?
어쩌면 그렇게 느껴질까?
보살입상, 여래입상, 반가사유상
다들 웃고 계시네.
최신 유행 유머 나누고 같이 좌르르? 아닐 것이다.
반가사유상의 얼굴에는 개구쟁이가 장난에 성공하고 짓는 득의의 웃음 같은 것이 걸렸다.
그런 게 아니다. 작고 여린 것들의 아픔까지도 지나치지 못하실 분이 웃을 여유까지야?
하면? 그래도 웃자는. 사랑 때문에 웃자는.
그 웃음을 보고 느끼고 전달되어
아픔을 견디고 슬픔을 이기고 맺힌 데 풀리고 막힌 데 뚫리고 닫힌 데 열리자는 웃음.
두려움을 없이 하고 위안을 주는 施無畏印(시무외인)과 바라는 바를 들어주시는 與願印(여원인)을 펼치셨네.
학암포와 신두리 사구를 둘러보았다.
신두리는 오년 전 한국에 다니러 왔다가 처음 가본 곳이고
그때 경탄의 한숨이 길게 이어지는 고동 같았더랬다.
물론 어제는 물때를 맞추지 못해 드러난 모래톱을 보지는 못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때 같지는 않아. 비슷하지만 달라졌어. 아냐.
{어른 되어 초등학교 교정을 찾아와서 느끼는 기분, “아니 여기서 대운동회를 했단 말이지?”}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안면도에서 잠자리 마련하고는 해넘이와 보름달을 즐기려고 했는데...
그냥 돌아왔다. 집 같은 데 없다며.
아내가 서산시 대()관에서 든 ‘낮정식’에 만족하니 그건 됐는데
바람 만나러 갔다가 바람맞고 온 느낌은 뭐 때문일까?
정말 The Last Rose Of Summer인지 딱 한 송이 남은 해당화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