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기행 2
멍게비빔밥 먹고 다찌집 들린 게 다인데 통영 다녀왔다고 해서 누가 잡아갈 건 아니지만
미륵도 들려 산양 일주도로도 달리고 케이블카-난 별로지만-도 타고 그럴 것이지.
그러면서 들릴 데가 미래사, 박경리 기념관, 전혁림 미술관 등이겠다.
지난 오월 전혁림 화백이 별세하시고 미술관은 어떻게 됐는지?
그야 알려진 다른 미술관들이야 작고화가들의 작품 소장한 채 잘만 돌아가는데다가
아드님이라지만 지긋한 나이의 전영근님도 나름 명성을 쌓은 중견 화가인데 무슨 어려움?
그래도 한 시대 한 동네 예술인들 중 남은 한 분마저 떠나시고 나니 일부러 찾아가기도 그렇다.
그게... 안 돼서 잘 된 사람 있고 잘 풀렸기에 더 잘 되지 못한 인생도 있거든.
박경리 작가는 어느 쪽일지?
아무튼 ‘문호’로 불릴 만한데다가 눈 감으시고는 호사를 누리시는 듯하다.
가신지 두해 만에 기념관도 완성되고 묘역도 공원이듯 잘 가꾸었다.
시는 말년에 시작하셨는가, 어른, 남자, aphorism(警句) 투로 몇 수 남기셨다.
그래 사마천, 그대를 불쌍히 여기는 이도 있는가?
외경과 열등감 지닌 채 바라뵐 분이거늘.
무의미와의 싸움에서 지지 않은 영웅.
묘소 가는 길 곁에 촘촘히 들어선 동백나무에 달린 봉오리들이 한꺼번에 터진다면?
다행히도 흔한 빨강동백은 아닌갑다.
편백나무도 즐비하다.
미래사(彌來寺)는 오실 부처님-엥? 56억 7천만 년 후에?- 기다리는 곳.
{언제라도 오실 분이라면 어디서는 못 기다리겠는가? 고도를 기다리듯.}
천년고찰이니 그런 게 아니지만 예쁘게 들앉은 평안한 절집이다.
1954년 구산스님이 효봉 대종사를 모시자고 토굴을 지어 시작하고
삼십년쯤 지나 크게 불사를 일으켜 대웅전을 지었다고 한다.
큰 그늘 밑에 또한 빼어난 수행자들 그치지 않아
구산, 일각, 법흥, 보성, 원명, 박완일, 고은 같은 분들이 머물렀고
수산, 구암, 법정이 출가한 곳이란다.
석두, 효봉, 구산 스님의 사리탑
미륵산 정상까지 30분 정도 걸리고
좀 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갈 수도 있다.
오 분쯤 빽빽한 편백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 따라 걸으면 도솔 미륵불을 만나게 된다.
합장하고 고개 숙이면 크신 분 발 밑에 피어난 구절초 무더기가 오히려 반갑다.
바다가 내려다뵈어 좋지만, 섬들이 가로막아 호수 같지 망망대해의 멋은 없다.
줄로 막아 놓으니 소떼 몰고 다니는 목장 길 같아 좀 그렇지만...
바람 만나 좋은데
한줄기로 왔다가 천 갈래로 찢어지는 건 무엇 때문인지?
경은 모르지만 마음 달래자고 몇 마디 주절댔다.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지는 않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이 아니라/ 한 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바람소리 물소리 소리갈, 파란 하늘과 더 파란 바다와 어둑한 그린 빛깔 다 좋아도
좋은 냄새보다 더 좋지는 않더라.
전날 음악회에서 갑자기 꺼내 입은 겉옷들이 뿜어대는 좀약 냄새로 어찌나 골이 아프던지!
비린내도 못 참지만 통영에서 나는 비린내는 그래도 괜찮더라.
하, 꽃보다 좋은 나무들, 수피, 바늘잎과 가랑잎들이 내는 냄새들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