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서 하룻밤
浮遊하던 것들의 궤적이 사라지고
자리 잡은 것들이 드러나면서 책들의 표지 색까지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백야? 그러다가 “지금 冬至잖아?”로 정신이 돌아왔다.
참, 서울에는 캄캄한 밤이 없었지.
고작 한주일 만에 돌아왔는데 그새 낮밤이 바뀐 건지 기내에서 그래도 눈 좀 붙여서인지
잠이 안 온다.
고치를 짓지 못한 벌레처럼 꼬물거려봤자 잡생각만 꼬리를 물테고 일어나 밥을 안쳤다.
서리태는 미리 삶아두고, 검은 현미는 더 불리고. 때 되면 김치는 있으니까...
커피 뽑고는 사과를 베어 무는데
냉장고 문을 여닫지 않고 오래 두어 그런지 얼어버렸네. 아유, 이 시려.
집 치워놓고 떠날 때나 불기 없는 빈 방에 다시 들어올 때 홀몸은 좀 그렇겠다.
줄곧 혼자 살았다고 해서 이력이 난 것도 아닐 것이고.
부르면 올 만한-제 생각이겠지- 사람 있다면 거절을 두려워하지 말고 불러.
옛날에 전보 칠 때는 글자 당 요금을 치렀는데, 더 절박해서는 아니고 돈 좀 줄이자고
한 자로 보내면 ‘와’, 험한 반말이라 글쎄, 두 자로 하면 ‘오라’
그래서 오겠나, 까짓 거 세 자까지 쓰자 ‘오시오’, 더 공손해야지 ‘오셨으면’
눌러앉아 같이 살자는 것도 아닌데 부담 없도록 ‘다녀가셔요’ 정도면 어떨지...
가만있자, 열 자까지는 기본요금으로 묶이지 않았던가?
정과정 버전으로 ‘아소님아다시들으시어’쯤이면 알아들을까?
불렀다고 쪼르르 달려오면 ‘임’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빌다가 치켜다보면 여전히 웃고 있어도 안자고 팔 한 번 벌리지 않는 돌부처를
어느 세월에 기다릴 것인가?
산 같다고나 할까...
“다가서면 늘/ 저만치 물러가 있는 그대.. .. 물러서면 늘 눈앞에 다가와/ 서 있는 그대”
(김기봉, ‘거기 있는 山’)
그러니까 기다린다고 오는 건 아닐 것이다.
파고 들어가서 느끼다가 돌아서면서부터 “그런가아닌가”로 확신하지 못하고 갸웃거리기.
“창 가리개를 올려주세요”라는 기내방송에 따라 열자마자
지는 해를 다 가리지 못해 흘러나온 붉은 기운이 쏟아져 들어온다.
暮色蒼然한 때에 慕情이 발동함이 뭐 그리 흉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게 참 맹랑한 것이라서...
그리움이 없어진 줄 알면 그리움을 그리워한다는 얘기
저는 모르기도 하고 인정하지도 않겠지만, 사람들이 밥 먹듯 그리움 먹으며 살아가더라는 얘기.
세관 통과 후 문이 열리면... 잠깐 두리번거리게 돼.
나올 이 없고 알리지도 않았는데 마중 나온 사람과 엇갈리면 어떡하나
그런 마음쓰임으로 뚜벅 걸음에 힘 실리지 않는 순간이 있더라고.
뭐야, 날 샜잖아.
좀 있다 슈퍼 문 열면 두부 한 모 사러 나갔다 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