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공식적인 ‘첫’ 눈? 뭐 그런 게 있겠냐?
한 도시에서도 여기는 왔는데 거기는 아니, 올 때 맞거나 보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고 보면
첫눈은 '내게 첫눈‘이라 해야 할 것이다.
남이 밟지 않은 설원에 첫걸음을 디디고
그렇게 낸 발자국을 두고 애써 첫사랑이라고 우겨보는 일, 그게 첫눈이다.
춥다고, 눈 올 거라고, 출근길에 교통대란... 그랬는데 괜찮겠구먼.
눈 좀 뿌렸고 녹았다 얼고 그러겠지만 다닐 사람은 다닐 만하구먼.
철없는 애들은 겨울비가 마뜩찮아 차라리 함박눈으로 펑펑 쏟아지기를 기다리고
나갈 일 없는 어른들도 제 형편만 챙기니까 동백꽃 목 부러져 톡톡 떨어지는 눈 소리를 그리워하지만
눈비야 오시는 대로 맞는 게지 제 뜻대로 고를 게 아니니까.
{짬짜면 같은 진눈개비면 또 어쩌겠나.}
반갑잖은 이 자주 들리더라도 막거나 내칠 수 없는 것이고
뜻밖의 손님에 놀랐다가 뜻밖의 선물에 기뻐하는 적도 있으니까.
“이게 아닌데”를 연발하면서도
못이기는 척하며 받고
떠나는 이 선선이 내어주기.
내다보니 제법 내린다.
겁나서 겁나게는 아닌데 그 동네에서는 그렇게 쓰는 말이 있다.
전라도 구례 땅에는
비나 눈이 와도 꼭 겁나게와 잉 사이로 온다
가령 섬진강변의 마고실이나
용두리의 뒷집 할머니는
날씨가 조금만 추워도, 겁나게 추와불고마잉!
어쩌다 리어카를 살짝만 밀어줘도, 겁나게 욕봤소잉!
강아지가 짖어도, 고놈의 새끼 겁나게 싸납소잉!
-이원규, ‘겁나게와 잉 사이’ (부분)-
해마다 ‘첫눈’을 가린다는 게 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