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가 시원찮아서
그때야 이럴 줄 알았나, 해서 박춘석 노래처럼
못 잊어 못 잊어 못 잊을 사람이라면 언제까지 당신 곁에 나를 버리고 살 것을!
“그럴 걸 왜?” 그래봤자 버스 지나고 손들기.
한때는 많은 날을 당신 생각에 밤까지 새운 일도 없지 않지만...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그러니까 잊었다는 얘기?
수능 문제의 정답으로는 “아니오, 잊을 수 없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그렇더라, 다 지웠다고 했는데 다시 떠올릴 흔적 남기도 하고
잡으려고 해도 새나간 게 있을 것이다.
내가 잊지 못하는 것을 그가 기억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때 그의 진지한 열정과 꾸밈없던 즐김을 부정할 것도 아니다.
잊을 것과 기억할 것으로 나누고 거르는 게 사람들마다 다르고
그렇잖든? 소월의 착한 글로는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우리다.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뭐였냐는 질문에 지우개라고 대답한 사람도 있다.
실수를 수정할 수 없다면 ‘작품’이 나오지 못할 것이다.
지워버려도 남은, 그리고 지웠기에 생겨난 것들은
지워질 때까지 명제이고 진리이고 관습이고 제도일 것이다.
참회, 용서, 사면 같은 것도 지움이라 하겠다.
반성 없는 망각도 지움이다, 가치 없는.
{해서 부패 정치인들이 명줄 긴 고양이처럼 살아남는가보다.}
성능 좋은 지우개라고 해서 싹 지우는 것은 아닌가보다.
말소했는데 유령처럼 다시 나타나는 것도 있다.
멀쩡해 보이는데 속에서는 암 덩어리 키우기도 하고.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먼 훗날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