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하트의 힘

 

“사랑합니다 고객님~”

그 소리 들리자마자 “A C, 시도 때도 없이...” 투덜거리며 수화기를 내려놓을 것이다.

그래도 어떤 노인은 태어나서 사랑한다는 말 처음 들어봤다고 울었다대.

길에 널린 게 사랑인데 아무 발끝에나 채는 건 아닌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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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서, 고지서 아닌 사신(私信)을 우표 붙인 봉투로 받아본 적이 언제였더라?

한 줄, 한 단어가 맘에 들지 않아 수없이 파지를 내며 서간문 작성하던 시절도 있었다.

보내고 후회하며 우체통 앞에서 기다리다가 집배원을 붙잡고 사정해본 적 있니?

이메일 보내놓고 상대가 열어보기 전에 ‘발송취소’로 거둘 수도 있는 세상.

{“안 읽음”이라 안심하며 빼오려는데 안 되는 경우도 있더라고. 완전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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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작성씩이나? 문자메시지 한 줄이면 되는 걸.

 

부호라고는 마침표와 물음표밖에 쓸 줄 모르는 나에게 날아온 하트.

빽빽한 검은 글씨들 뒤에 찍히는 빨간 하트 한 개가 보색대비의 산뜻함뿐만 아니고

립스틱 짙게 바르고 다가오는 입술 같아서 여간 큰 충격이 아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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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신없어 보일까 망설이다가 나도 써봤는데... 뻑적지근하지 않더라.

진한 애정표현으로 오해받지 않을까 오버할 필요도 없고

박칼린의 ‘I 믿 You’ 정도의 위트랄까

“당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 당신 편입니다, 그냥 ‘호의’로 여겨주세요” 정도로

지나갈 수 있겠더라고.

 

노간주나무 화환 아래서는 누구하고라도 키스할 수 있다는 핑계를 떠올리며

“큰 의미를 두지 말아요, 좋아서 키스하고 지나가면 그만이니까요”에 동의한다는 것은

실패의 무안을 염려하여 퇴로를 열어두는 것이지

그것도 소심하지만 사랑의 고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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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한 선언, “이 세상 모든 사랑은 무죄이다”가 아무렴

면죄부 남발로 참을 수 없는 사랑의 가벼움을 전파하려는 것이랴

불보다 뜨겁고 죽음보다 강한 지독함으로 범죄와 동시에 보속을 치른다는 얘기 아닌가?

 

시작은 보통 미미한 것이고

뿌렸다고 다 나지도 않고 싹텄다고 다 자라지도 않는 거니까

어떻게 될지 지금 걱정할 건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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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하트’ 하나 받았으면 씩 웃고 지나갈 것이고

얼결에 찍어 보내고 ‘작업개시’로 오해받을까 자책할 것도 아니다.

 

사랑 흔하다고 그랬잖아~ {버럭}

사랑합니다, 고객님!

 

쓸쓸한 연말에 춥기는 왜 또 그리 추운지

아무래도 빨강 하트 더 나대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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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집 뜰 안에서 자란 꽃나무 예쁘다 그러면 됐지

들어가 훔칠 수는 없지만

담 밖으로 뻗어 나온 가지 아래 서 있다가

냄새 맡거나 쏟아지는 꽃비 뒤집어쓰는 거야 어쩌겠냐고?

 

그렇게, 그렇게 넘쳐나는데도

늘 모자라는 게 사랑이더라고.

 

{그런데, 하트 그거 정말 괜찮은 거야?  피라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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