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리
방 두 개를 남자 방/ 여자 방으로 쓰며 부모님과 육남매가 살던 집에
조모, 외증조모, 외조모까지 동시에 모신 적이 있었다.
{외증조모와 외조모는 친정이 이조 말엽 세도가이기도 했다지만
시대가 바뀌고 자손들이 시원찮거나 일찍 간데다 자신은 壽卽辱(수즉욕)이랄까, 에휴~}
‘큰할매’로 불리던 외증조모님이 나를 부르시면 나는 오만가지 인상을 쓰며 마지못해 선다.
-와요?
-묵은쌀이 난기요, 햅쌀이 난기요?
{에고, 짜증나...}
묵은쌀이 낫다 하면 “아무래도 햅쌀이 좋제”라 할 것이고
햅쌀이 낫다 하면 “그라도 묵은쌀이 낫다”고 하면서 놀리자는 것이었다.
유일한 장난과 소통의 심심풀이 기회에 알면서 걸려든 것을 큰 희생으로 여기며 물러설 때에
“핫, 하~”라는 건조한 웃음소리가 등 뒤로 따라붙곤 했다.
문지방을 타고 서서 “내가 지금 나가려는 것인가, 들어오려는 것인가?” 그러면
뭐라고 대꾸해줘야 되겠는가?
“그건 당신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잉그리드 버그먼을 좋아해, 오드리 헵번을 좋아해?”
그게 또 까딱수에 공든 탑이 무너지게 되는 함정이기도 하다.
잘못 짚었다가는 단 한 방에 어이없이 당하고 만다.
“둘 다 예쁘지만 그래도 오드리 헵번이...” 그랬다가
“여자에게는 잉그리드 형과 오드리 형이 있는데, 다들 날 두고 잉그리드 형이라고 그래요.
댁은 오드리 형을 좋아한다니 아무래도 우린...”로 나오면
유구무언, X 밟은 거지.
머리를 굴린다고 “둘뿐만 아니고 마릴린 몬로, 소피 마르소... 다 예쁘잖습니까?” 했다가
“그저 치마만 둘렀다 하면 가리지 않고 다 OK란 말인가요?”로 나오면?
차라리 기절하는 게 낫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하긴...
다 좋다 해서 다 가질 수 없는 것.
모든 존재는 선택의 결과.
그러면 어때?
아니면 어때?
그래도 그렇고 아니어도 그렇더라.
그렇게 살아온 것도 선택이었는데
나이 들면서 원색을 골라도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문지방’이라는 말이 나와서 얘긴데
‘On the threshold of’라는 말은 ‘바야흐로 ~하/되려고 하는’이라는 뜻이잖아?
문턱에 섰다는 건 향하는 쪽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지 돌아서겠다는 뜻은 아니잖은가?
아까 새해인사가 들어와서 답장을 보냈다.
딱히 덕담이랄 게 떠오르지 않아 “떠나서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라 샬롬”이라고 했다.
그러자 곧장 날아드는 메시지.
“절더러 자리 구해 나가라 해서 기도하는 중임을 어찌 아셨어요?
불안했는데 선생님 말씀 들으니 용기가 납니다. 감사합니다.”
알기는 뭘 알았겠는가?
그러나 그렇잖은가? 뭉그적거릴 때 강권적으로 밀어내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을 것이다.
때로는 엉덩이를 걷어차는 발길로 여겨지기도 하겠으나 나가면 길이 있을 것이다.
길이 있으니 나아가면 된다.
갈림길에 이르렀다고?
두 길을 다 갈 수는 없으니까 한 길을 택해야 할 것이다.
인도하심을 믿는다면 다행이고
아니라도 마음이 끌리는 대로 가는 것이지
사인포스트로 거기 마냥 서있을 수는 없잖아?
옛것은 다 ‘나가리(ながれ)’-순화대상인 줄 알지만-로 여기고
이제는 나아가리.
테니슨의 시 ‘Ring out the old, ring in the new’, 찬송가로는
“종소리 크게 울려라 저 묵은 해가 가는데 옛것을 울려 보내고 새것을 맞아들이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