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가대교 한번 쓱 지나갔다
무슨 도원결의 같은 게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호형호제하자는 정도였는데
능력 없어도 나이만 많아 대형 노릇해야 할 사람이 챙겨주지 못하니
진즉부터 ‘아우’에게 맘 놓고 반말하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하루 놀고 하루 쉬는 사람이 따로 얻을 말미가 있겠냐만
한번 내려왔다 가라는 전갈도 있고 해서 다녀왔다.
내려온다고 해서 이불 호청도 갈고 몸 씻고 기다렸다나?
{섭섭했겠네만, 그 무슨 야동 같은 말씨로 불평을...}
옛날 옛적에 고 박정희 대통령이 군부대를 순시한다고 하면
지휘관은 그가 좋아한다는 흑장미를 구하느라고 난리법석을 떨었다는데
한겨울에 강원도 산골에서 무슨 장미를 구하겠는가?
비상등 켜고 달려 서울에서 장작더미만큼 구해다가 꽂아놓는 작전을 수행하는데
내방한다던 일정이 수차례 조정되는 바람에
번번이 봐주는 이 없이 얼어 죽은 장미 치운 게 나뭇광에 쌓아놓은 솔가리만큼 되었다는 얘기.
내 손에 용돈을 쥐어주고는 다른 분들이 잘 모시겠다고 해서... 내 1 charm...
Connecticut 사는 막내는 소낙눈 끝에 나가본 뒤뜰 사진을 보내왔다.
지구온난화로 이렇게 춥게 되었다?
아무튼 이쪽도 올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날에 반도 남단을 찾았다.
이 나라에서 매화가 가장 먼저 핀다는 구조라 초등학교를 들려 확인하려했던 것은 아니나
동백 숲에 점점이 박힌 붉음은 기대했는데 그것마저 아직 아니던걸.
일없이 다리 한번 건너 가보자는 사람들 줄어들어 막히지는 않았다.
쪽빛에다가 더러는 비취색이기도 한 바다를 바라보다가 밝은 터널을 지나기도 하다가
시간이 흘렀다는 느낌도 없이 거제도로 들어왔다.
외포 항에 들려 점심부터 들자고 해서 늘어선 횟집 중 한 군데 골라 들어갔다.
대구가 한 때 잡히지 않아 한 마리에 70만원도 했다던데 인공부화 등으로 개체 수를 늘려
이제는 산지에서 육만 원 정도면 큰놈 구할 수 있다고.
대구탕 시켜놓고 뽀얀 우유 같은 국물 맛을 즐기고 있는데
나가는 사람들마다 값 치르며 구시렁거리고 더러는 고성으로 주인을 닦아세운다.
벽에 붙은 가격표에 꼭 만 원처럼 보이게 작은 글씨로 써놨는데 자세히 보니 만 오천 원.
부녀회 주관 대구 축제를 하며 한 그릇에 육천 원이라고 광고를 했다나.
거가대교 개통 경축 판촉 행사는 끝났으니까 그 값에 먹을 수는 없겠으나
잘못 알고 찾아왔다가 많은 계원들을 대접하는 이 달에 돈 탄 사람으로서는 배 아플 수밖에.
{값은 어떻든 미나리라도 푸짐하게 넣어줬으면 좋겠는데 딱 짧은 털실 두 올 정도만 들어갔더라.}
포로수용소 유적지 간만에 찾아봤는데...
감동이 없더라.
좀 더 성의 있게 챙겨놓았으면 하는 바람.
바람의 언덕, 신선대 올랐다가
한 바퀴 돌아 나왔다.
저녁 먹고 KTX 타고 올라와서도 하루 다 가지 않은 것 같은 느낌.
굳이 그럴 이유나 필요가 없어서 그렇지 그러자면 당일에도 다녀올 수 있겠다.
통영, 거제 같은 데도.
마음은 늘봄이라 해도 볼거리 없이 봄이라 하겠는가.
어느 아침에 눈 위로 불쑥 돋은 스노드롭, 잇달아 피어나는 수선
그러면 매화와 산수유 찾아 나서게 될 것이다.
다른 건 없고 시간만 있는 사람이 어딜 다녀오자면 챙겨주는 사람들
앞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못하지만... 아우들아 고맙다.
노래 제목은 “내가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의 프렐루드를 들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