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에서
‘옛 임’
오래 전 연인은
오래 된 연인
누가 아내와 아침식사하면서 그런 얘기할 수 있겠는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The Waste Land’)를 연상하며
“묻혔던 가축의 시체들이 튀어 오르고”라고 그랬다.
{묻혀 사라진 줄 알았는데 떠오르는 기억이 있지.}
대꾸/對句가 걸작이다.
“부패해서 (가스가 차서) 그렇겠지.”
알뿌리에서 돋아난 싹이 눈을 뚫고 눈 뜨더니
꽃대인 줄도 몰랐던 것들이 불꽃을 터트린다.
크로커스, 히아신스, 수선, 튤립, 빨강, 노랑, 파랑, 보라, 분홍, 하양.
일 년 지나 피는 꽃들이 어제 밀회를 즐기다 헤어진 연인 같다.
벅차게 기쁜 건 아니어도 당연히 누려야함을 확인하는 웃음.
그 뿌리에서 올라왔고 그 자리에서 피었다고
‘다시’ 피었다고 할 수 없고 그때 그 꽃도 아니다.
임은 하나만 두어야 하는가?
그 임은 혼자 빼어나서 여타(餘他)와 비교조차 안 되는 걸까?
그 임은 굄을 독차지해야 하는 걸까?
못난이들, 못 생겨서가 아니라 특출하지 않아 못난이라 하지만
밉상은 아니고 그저 그만해서 마음 놓이는 인상이라서
정 주는 게 어렵지도 않고 굳이 거둘 이유도 없는 이들 말이지
그 중의 하나를 두 번 째 마주치고 나서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는 생각든 후에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그쯤이면 ‘미인’ 된 거지.
일부러 고를 것도 아니라서
보자마자 딱 꽂혀 어울렸다네.
그래도 ‘택했다’ ‘뽑혔다’라는 느낌 들면
끝까지 책임지든지 잘 보이도록 가꿔야 하는 걸까?
중생이 불성을 지닌다는 말은 좀 약한 메시지?
현신불(現身佛)들 널려있던 걸.
천불천탑(千佛千塔) 구름 중에 머무는 곳이라는데
많다고 천이나 될까? 어림도 없네.
많이들 가버렸다.
앞으로도 여럿이 사라질 것이다.
남은 것들의 크고 작음을 원근법으로 풀이할 수 있을까?
더 끌리는 이가 있기야 있지.
단 둘이 있어야 더 좋으면 임이라 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