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세상이 창문 없는 monad(單子)들로 구성되었다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문 닫고 살 게 아니잖아?

 

문은 닫을 수도 있지, 그렇잖으면 뚫린 대로 두지 문 달 게 아니거든.

그래도 문은 열려야지, 열리지 않을 문이라면 벽으로 남겨두지 뚫을 것도 아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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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닫자고(開閉) 있는 문(門)이라도 공공기관이나 영업장소에 있는 것도 아닌데

반짇고리 꺼내 늘어놨다가 챙겨 벽장 속으로 도로 들여간다고 공고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미안하지 뭐, 클릭 한번이라도 발길 돌림이니까.

 

실은 남 보여주자는 게 아니고 내가 내다보고 싶어서 연다는 얘기.

창은 채광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밖을 보려고 낸 거지

안을 들여다보라고 단 건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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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의 나르시시즘에 노출증을 동반한다고 해도

보여주고 싶은 사람 따로 있고 누구나 ‘자뻑’을 받아줄 것도 아니니까

더러 커튼 치는 때가 있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아니네.

{싹싹하게 “죄송합니다” 그러면 될 텐데 뭐라고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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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줄 건 없고

그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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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그건 위험에 처한 사람의 SOS이거나 대량살포 광고전단이지 ‘편지’는 아니다.

더러 처음부터 돌려 보라(回覽)고 작성한 지휘서신, 목회서신 같은 것도 있기는 하겠으나

수취인은 보통 특정 개인이다.

{업무용 통신이 늘어난 세상은 잠깐 잊고 하는 얘기.}

 

편지를 보내지 못해 미안한 경우에조차 보낼 상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살맛나지 않는가.

쓰고도 부치지 않은 편지들이 쌓여 아린 가슴이면서도 “나 정말 괜찮아”라는...

 

“편지에 문안”이라는 말이 있다. 꼭 끼거나 따라붙는 것이 있다는 뜻.

예전에 안부를 ‘寒喧(한훤)’이라고 그랬잖아?

춥거나 더워지면 그런 때에 잘 있는지 궁금해서 묻게 되더라는 얘기.

{에고, 봄이 오니 생각나는 이(들)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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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행 중에 ‘이중섭미술관’과 추사 유배지에 세운 ‘제주추사관’에 들려

‘편지’를 읽는데, 그래 뭐 내가 받은 게 아니니까 ‘글자’지, 글씨를 보는데

한라산 눈 녹은 물 내리흐르듯 하는 개울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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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簡, 書翰, 簡札, 聲問, 信書, 尺簡, 片楮, 手迹... 뭐라 부르든

쪽지(片紙) 한 조각, 많아봤자 두어 장에 써내려간 글자들,

뜻글(表意文字)이냐 소리글(表音文字)이냐 이전에 상형문자

알만한 이가 情으로 感知하는 기호들이 흩날리는 꽃잎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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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성가셔서 떠났던 게 아니고 어쩔 수 없이 헤어졌던 이들...

 

강진 유배시절 茶山은 병든 아내가 보내온 치마폭을 잘라 자식들에게 편지를 썼다.

시집올 때 입었던 활옷의 붉음이 많이 가신 조각들을 ‘霞帔(노을치마)帖’이라 했다.

 

땅끝도 벗어난 제주에 유배 가서 탱자울타리 집에 갇힌(圍籬安置) 秋史가 부인의 부고를 받고서는

來生에는 바꿔 태어나 나 먼저 죽고 그대 살아 이 마음 이 설움 알도록 부탁하겠다는

시-‘配所挽妻喪’-를 지었다.

 

가족을 살필 능력이 없어 처자식을 일본으로 떠나보냈던 이중섭은 아내에게 이렇게 쓴다.

“나의 최대 최고 최미의 기쁨, 그리고 한없이 상냥한 최애의 사람, 오직 하나뿐인 현처 남덕군,

잘 있었소?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꽉 차 있소... 어서 아고리의 두 팔에 안기어 긴 입맞춤을 해 주오,

하루 빨리 기운을 차려 내가 좋아하는 발가락 군을 마음껏 어루만지도록 해주오,

나는 당신을 아침 가득히, 태양 가득히, 신록 가득히, 작품 가득히 사랑하고 있소...

나만의 소중하고 또 소중한 가없이 착한 오직 유일한 나의 빛, 나의 별, 나의 태양,

나의 애정의 모두 주인인 천사... 건강하게 기운을 내주오.”

부인 남덕(山本方子)은 그렇게 시작하고 맺었다.

“사랑하며 그리워하는 아고리... 마음으로부터 당신의 남덕.”

“너무너무 기다려서, 어쩐지 당신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생각이 드는 때도 있어요…

이곳에는 당신의 남덕과 당신의 아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언제나 오실 수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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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아니’, 혹은 ‘~일 수 없는’, 그래도 떨어져 있자니 너무 아픈 사이에도

편지를 쓰거나 흐린 하늘에 보이지 않는 잉크로 습자 연습하는 일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새벽 편지를 쓰기 위하여

 -곽재구, ‘새벽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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