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노래 5 정선, 강릉
아침에 태백을 떠나 정선을 거쳐 강릉으로 오면서
아직 아니, 한창, 이미 아니의 확연한 차이를 목격했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나는 돌아가리라”라고 다짐했던 태백 총각은
동동구리무와 얼레빗 사들고 순이 보러 가기에 준비할 날들이 며칠 남은 셈이다.
행정 경계로는 기후 차이를 설명할 수 없겠다.
태백과 인접한 정선, 사십 분 걸려 닿은 아라리촌은 꽃 천지였다.
아무리 낮춰도 배 깔고 눕지 않은 다음에야 할미꽃과 눈높이 인사하지 못하겠네.
제비꽃,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오랑캐꽃, 반지꽃, 앉은뱅이꽃, 병아리꽃, 장수꽃...
보랏빛만도 아니고, 노랑, 하양, 무늬나 털 있는 놈도 있다.
은사시나무 수피 좀 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조반 들지 않고 찾아왔는데 밥 생각이 안 난다.
그래도 먹긴 먹어야 하니까... 그 왜 콧등치기국수라는 거 소문이 거저 난 게 아니더라고.
아우라지에 있던 섶다리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가뭄, 폭포라지만 전립선 문제 있는 할배의 오줌발 정도
에구, 명자꽃 색깔
오죽헌, 선교장, 경포호, 정동진
몽골 기병처럼 치고 빠지는 걸음으로 스쳤지만
마침 제때를 만나 매향으로 골치 아프고 벚꽃 비를 맞기도 했다.
밤새 많이 떨어졌네?
{꽃이란 그렇지, 이제는 “Ah! non credea mirati, si presto estino, o fiore”할 것 없다.}
하룻밤이 긴 시간인지, 극적인 변화는 순간에도 이루어지는 건지
만났다가 헤어지기도 하고, 헤어졌지만 평생 지울 수 없는 화상을 입기도 하고.
같은 날 같은 하루를 사는 게 아니고
봄날 오지 않은 데도 있으니 가버렸다고 탄식할 수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