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노래 6 진다기에
序
질 때 지더라도 피어 꽃인데
진다기에 진달래?
“꽃 필게” 아닌 “진달래”.
꼿꼿이 꽂혀 꽃인데
당신 앞에 바로 서지 못하네?
{그대 앞에만 서면~}
천만가지 꽃 중에 무슨 꽃이 못 되어!
I
나비 만지고 눈 비벼도 눈멀지 않고 다듬잇돌 베고 자도 입 비뚤어지지 않더라며
양잿물 먹어도 죽지 않음을 보여주려다가 혀와 입술을 태우고는
하지 말라는 건 다 이유가 있어 그런 줄 알고 안 하기로 했는데
아슬아슬한 데 무사통과하고 나서 “See? I told ya. I made it!” 그러고 싶은 마음 버리지 못해
소형차 끌고 험한 데 들어갔다가 장비와 실력이 뒷받침하지 않아 낭패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차 다니라고 닦아놓은 길이지만 국제면허로 1500cc 차를 끌고 갈 데가 아니더라고.
밀양시 삼랑진에 있는 만어사.
좀 나은 길도 있다는데 Miss Kim이 어이해 그리 끌고 갔는지
꿀텅꿀텅, 에고 머플러 떨어지고 연료통 찌그러질라
깔딱깔딱, 숨넘어가는 소리 끝에 갸르릉 소리 내고 주르륵.
타이어는 타지요, 진흙과 돌멩이는 사방으로 튀지요, 모시는 분은 공포로 빈사지경,
어서 내려가요? 아니, 어떻게? 꼬불꼬불 비탈을 ‘빠꾸’로?
암튼 살아 돌아왔다.
그 많은 바위들은 굴러오지도 않았고, 솟아나지도 않았을 텐데 어떻게 한 곳에 모였는가?
용왕의 아들이 더 살고 싶어서 살 데를 찾아 나섰는데
무척산 신승이 이르기를 가다가 쉬게 되는 곳이 인연터라 하여
응, 어쩌다가 멈춘 데가 거기, 그러자 뒤따르던 수많은 고기들(萬漁)이 크고 작은 바위들이 되었고
용왕, Jr.은 미륵바위가 되었단다.
아기 못 낳는 여인들이 가서 빌면 득남하게 되고
병 있는 이들은 제게 알맞은 바위 하나 찾아내어 누우면 효험을 본다나.
수로왕이 창건했다는 얘기는 좀 그렇지만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은 1181년에 세웠다니 오래 된 절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고...
“날 잊지 말아라” 외치며 떨어질 만큼 위험한 벼랑에서 진달래를 끊어다가 한아름 안겼다.
헌화가.
할아버지 지고 가는 나무지게에 곱게 핀 진달래가 피었습니다?
‘꽂혔습니다’ 아니고? 그 참 이상하다, 기억이 맞는가?
‘곱게 핀’ 다음에 왜 또 ‘피었습니다’?
{국어교육 첫걸음에 억지로 운율 맞추려다 그리 된 건가.}
어디선가 날아온 호랑나비가 너울너울 춤추며 따라갑니다?
그것도 제대로 기억하는지 자신 없지만...
그건 확실하다, 들길에서 나비가 빨리 날지 않고 쉬엄쉬엄 내려앉기도 하며 앞길 인도하더라고.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그것도 7.5조 맞추려고 그랬다기보다
꽃이 작아 더 귀여운 ‘아기진달래’가 따로 있는 게 아닌지?
딱 “그기 기여! (가가 가라)”랄 수는 없지만
정선 단임골에서 손닿지 않는 곳에 피어있던 진달래.
{아휴~ 거기서도 차 돌리느라 땀 뺐다.}
II
옛 벗 손군과 악수라도 한번 할까 해서 먼 길 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분당 중앙공원 꽃길을 거닐게 되었다.
이런저런 날 다 좋은 날이지만
그렇고 그런 김치 어쩌다가 죽여주는 맛, 다시 못 만들 명품으로 빠지듯
어떤 갠 날 고운 꽃길이 ‘기쁜 우리 젊은 날’로 다가오네?
시력은 젊은 날 같지 않아서 “응? ‘비트게 살자’가 뭐지?” 하고 다가가 보니까
아, ‘바르게 살자’였구나.
{맞아, 허리 펴고 살았으면 좋겠다.}
혼자 나온 이들 안 됐지만
내가 어떻게 해줄 수도 없고...
Durée의 진폭에 따라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혹은
“Do you remember the paths where we met? Long long ago, long long ago
즐거웠던 옛날의 그 노래를 다시 한 번 들려주오”로 남을 것이다.
찰나(刹那 ksana)는 손가락 한번 튕길 사이(彈指頃)를 잘게 자른 만큼보다도 짧지만
‘순간’이라 해도 점은 아니고 면적을 지닌 어느 정도의 ‘지속’이다.
입맞춤을 물마시듯 하는 오래 된 연인 사이 아니라도
눈맞춤 한 번에 ‘신곡(Divina Commedia)’을 이루어낼 영감의 샘이 되기도 하니까...
III
비가 온다.
벚꽃 지다, 봄날은 간다, 봄비... 그런 노래들 듣겠네?
낙화인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요
‘L'invitation au voyage’는 어떨까?
{예전에 “책상 위에 (꽃)이 있습니다”라는 예문에 ‘Les Fleurs du mal’을 대입했다가
불어교사에게 야단만 맞았다.}
{맘에 안 든다고 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박은수 옮김’}
아가야, 누이야,
꿈꾸어보렴
거기 가서 같이 사는 다사로움을!
한가로이 사랑하고,
사랑하다 죽으리
너를 닮기도 한 그 나라에서!
(... ...)
만남은 봄날 밤비에 터뜨린 봉오리들
헤어짐은 철 아닌 가을 소나기
그 갑작스러움과 기약 없음에 놀라지만
봄 가도 세상 그대로, 가을 가도 삶은 계속되고
피고 지기 여러 번에도 그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