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응원단 이야기

 

한국 팀이 진즉 떨어졌다고 세계의 축제 월드컵 관전을 그만둘 건 아니지만, 나는 좀 심한 것 같다. 그런데 냉방된 방에서 앉아있는 것도 힘들면 누워서 보기도 하는데, 왜 혓바늘 돋고 입술이 터지는지? 에고, 거기다가 멕시코 선수 걔 누구더라 발뒤꿈치 패스가 연이어 성공하는 걸 보며 따라 해보려다가 좁은 아파트 거실에서 식탁 다리에 걸려 꽈당, 아이고~ 아야~ 끄응~  애석하다 멕시코, 챔프 스페인을 격침시키고도 배고팠는지 네덜란드와 맞붙어 정말 멋진 경기를 펼쳤는데, 정규시간 후 부과된 페널티 킥, 그거 정말 정당한 건가? 로번(Arjen Robben)이 대선수인 건 맞지만 연기력조차 최고수준인 줄은 몰랐네. 보통 경기 시작하고 10분만 지나도 주심이 어느 쪽에 호의적인지 알겠더라고. 왜 멕시코는 항의도 없이 지나가는지, 대 카메룬 전에서 두 번이나 골을 도둑맞더니-그건 그러고도 이겼으니 지나갔지만- 또 그렇게? 또 심판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경기력이 아니라 심판이 승부를 좌우하는 걸 보고 있자니 민주주의 열등국가의 공명선거 캠페인이 떠올라 열불난다.

 

조별 리그에서 한국이 일승의 제물로 꼽았던 알제리, 독일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지는 못했으나 어쩌면 그리도 잘하던지? 대한축협이나 감독은 정보부족으로 오판했다고 치고 멋모르고 한국이 이길 상대로 알고 있던 국민은 얼마나 황당하고 또 미안한지? 주최국 브라질과 칠레의 경기, 그게 또 두고두고 기억날 열전이었다. 축구가 그런 거구나!

 

이제 칠레 응원단 얘기. 캐나다의 The Globe and Mail 6월 22일자 신문에 실린 기사, 한국에서는 서울신문이 일부를 전재(轉載)했다. 여객기로 대거 몰려온 다른 중미 부자 팬들과는 달리 아르헨티나와 칠레 응원단은 하급 노동계층의 사람들이 차량을 이용하여 브라질 경기장을 찾았다. 이웃나라라고? 거리가 6.000 km, 그런데 눈보라로 안데스산맥을 넘는 산간도로를 이용할 수 없어 7,600 km가 되었다고. (서울-부산 간이 딱 천리, 400 km} 대절버스? 그 정도 여유도 없어 의기투합한 이들이 경비를 분담하여 고물 밴 타고 거기서 먹고 자며 찾아왔다나. 간간이 아르헨티나 경찰이 뇌물을 바라며 집적거리기도 했고. 그렇게 찾아온 3,000명의 국민응원단, 800대의 캐러밴에 끼었던 히메네즈(Wilson Jimenez, 42세)의 얘기. 건설노동자인 그는 열 달 전부터 준비하며 2,000불을 모았고 페이스북을 통해서 동행을 모집하여 왔다고 한다. 돈이 떨어진 사람들은 다른 차를 구하여 먼저 돌아가고, 꼬불친 게 남은 사람은 좀 더 버티고. 그들 대부분은 국외 여행이 처음이고, 경기장 입장권조차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저 좀 더 가까이에서 열기를 느껴보려 한 것.

 

한국인들은-어디 다 그러겠냐만- 세계 안 다녀본 데가 없도록 나다닌다고 그러대. 명승지나 이름 있는 도시 정도는 오래 전에 졸업해서 극지, 오지 같은 데를 일부러 찾아다닌다고. 40년을 해외에서 산 나는 공항 경유를 빼고는 일본이나 중국 땅도 밟아보지 못했다. 유럽, 호주, 남미도 가본 적 없다. 여유가 없어서였지. 그리고 부모님 살아 계실 때야 어떻게 어른 뵈러 가야지 차비 들여 다른 나라를 ‘그냥 재미로’ 갈 수 있었을까. 지금은? 가자면 갈 수 있겠지. 칠순에, 결혼 사십 주년에... 그런 핑계로 “꿈도 야무져라” 식의 세계일주 계획을 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한국 한 번 더 가는 게 좋다.}

 

내 얘기 하려던 게 아니고, 그 칠레인들... 꿈의 여행이 끝나면 또 가난하고 고달픈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보지도 않은 이들이 많을 텐데, 그들은 ‘외국 여행’의 추억을 두고두고 되새기며 이야기할 것이다. 가장이 이천 불의 여행경비를 모으는 동안 다른 가족들은 또 얼마나 희생했을까?

 

좀 엉뚱한 방향으로 화제가 바뀌는데. 한-칠레 자유무역 협정 말이지. 반대도 완강했고 협상은 질질 끌다가 체결되었는데... 어떤 농산물의 생산원가는 한국이 칠레 대비 30배에 이른다고 그러대, 허니까 물류비를 고려하더라도 가격 경쟁이 될 리 없으니, 한국 농촌의 특정작물 생산자는 사업을 접어야겠네? “아, 우리 자동차나 전자제품이 칠레에서 관세장벽 철폐로 더 팔리게 되면 결국 국익 차원에서 수지맞는 일이고...” 식의 해설도 일리가 있겠네. 그러나 칠레의 농업은 대부분이 미국자본과 대규모경영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가난한 칠레인들은 변변한 구매력을 갖추지 못했으니까, 자유무역이 과연 이해득실에서 한국 측에 유리하냐는 건 속단할 게 아니네. 한-칠레 협정이라는 구멍을 통해서 보통 미국이 원적지인 특정 다국적기업의 점유, 장악, 지배력만 확장되는 게 아닌지?

 

칠레 국민들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 언제 남미 다른 나라에서 월드컵이 다시 열리게 될지 그때에는 많은 이들이 품위 있는 여행을 하며 즐기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국의 농민들-가난한? 특용작물 대규모 재배의 경우 딱히 가난하다 그러기도...-도 무작정 반대하며 작물을 고속도로나 서울의 전략적 요충지점에 쏟아 붓는다든지 하는 시위도 그만하기를. 다들 저, 제 가족, 제 마을의 기득권을 지키고 작은 불편이나 손해를 감수하지 않겠다는데, 그래도 대의를 지키고 상생의 길을 찾는 노력을 그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너도 나도 같이 잘 살면 좋지, 안될까? 이제 인류는 개체로서가 아니라 종(種)으로 살아남느냐의 문제에 직면해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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