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齋) - 秋史 글씨와 함께

 

유운룡(柳雲龍)이 집을 지었을 때에 그의 스승 퇴계는 ‘謙唵亭’(겸암정)이라는 현판을 내리며 찔러 넣은 편지에서

“자네가 새 집을 잘 지었다고 들었네 내 가서 함께 하고 싶으나 언제 그럴 수 있을지 아쉽네”라 하였다.

 

그럴 사이가 아니니 내 가보지 못하나 참 잘되었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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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데 골랐겠네만 흐르는 물이 가까이 있는가?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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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거야 다 그렇게 밤낮없이 흘러가겠고

머무는 사람은 뭘 하실 건가?

 

허난설헌은 ‘閒見古人書’라 했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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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책이나 쌓아놓고 내키는 대로 뽑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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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그리는 촌집으로 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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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대정 추사 유배지에 차려놓은 기념관에 들렸다가 꽂히고는

예산에 있는 고택과 화암사까지 찾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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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적에 행세하던 이들 집이라고 크기만 하고 복잡하도록 다 갖춘 것들과는 달리

“딱 그만하면 되었네” 싶은 규모에 단정하게 들앉았다.

{어느 정도 되면 딱 그만하달 수 있는지, 그건 뭐 입씨름 즐기는 이들이 혹 달라붙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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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烹豆腐瓜薑菜(대팽두부과강채)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면 좋은 반찬

高會夫妻兒女孫(고회부처아녀손) 부부, 자녀, 손이 모이면 최고

그게 촌늙은이의 으뜸가는 즐거움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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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도 짧고, 귀양살이 주제에 집에서 부친 음식들이 상했으니 어서 다시 보내라고 채근하던 양반인데

고난을 통해서 아랫사람들 사는 법도 익히고 겸손해졌던지...

 

“단계벼루-명품이네-와 차 끓이는 대나무 화로, 시 지을 집이면 족하다!” 했으니

가질 것 다 가진 분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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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으로 창을 내겠소? 대청이 그리 보고 있으니

조그만 창 어디로 나든지 “볕 많이 들어와 그 앞에 오래 앉아 있게 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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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없으면 슬프고 집이 있어도 슬프다.

그래도 좋은 집 보면 좋다.